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의 적법 여부 - 김유신
- 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8다22008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8다24349 판결 -
목차
Ⅰ. 서론
Ⅱ. 사안의 개요, 소송의 경과 및 대상판결의 내용
1. 제1 대상판결
2. 제2 대상판결
Ⅲ. 기판력의 본질과 권리보호이익 및 기판력의 시적 범위
1. 기판력의 본질
2. 기판력이 미치는 후소의 권리보호이익
3. 기판력의 시적 범위와 후소 법원의 심리대상
Ⅳ.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와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
1.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2.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
Ⅴ. 대상판결에 대한 학설의 평가
1. 제1 대상판결에 대한 학설의 평가
2. 제2 대상판결에 대한 학설의 평가
Ⅵ.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
1. 제1 대상판결에 관하여
2. 제2 대상판결에 관하여
Ⅶ. 결론
논문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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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 및 이미 그 기간이 경과한 후에 각각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가 모두 적법하다고 판시하였다. 이 글에서는 기판력의 본질과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라는 관점에서 위 두 판결을 검토한다.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모순금지설과 반복금지설이 대립하고, 판례는 모순금지설을 따르고 있는데, 권리보호이익을 탄력적으로 해석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하고 논리적 일관성도 잃지 않는 모순금지설이 타당하다.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는 입증곤란 구제,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 의무자의 정당한 신뢰 보호에 있다.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절대적 소멸설과 상대적 소멸설이 대립하는데, 판례는 절대적 소멸설에 변론주의를 결합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나, 상대적 소멸설에 근접한 사례도 있다. 사견은 시효중단의 재소나 시효이익 포기 등을 논리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고 헌법과 보편적인 정의관념에도 부합하는 상대적 소멸설을 지지한다. 제1 대상판결은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하여 시효중단 재소가 제기된 사안인데,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모순금지설을 취하면 권리보호이익을 매개로 시효중단 재소의 적법성을 인정할 길이 열리게 된다. 구체적으로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와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검토를 거쳐서 판단하여야 한다. 상대적 소멸설에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어도 시효원용권이 행사될 때까지는 권리가 존속하므로 시효중단의 재소를 불허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나아가 절대적 소멸설에 따르더라도 아직 채권이 시효로 소멸하지 않은 상태여서 시효중단의 재소를 금지할 명분이 부족하다. 따라서 제1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어떤 견해에 따르더라도 시효중단 재소를 허용하게 된다. 한편 제2 대상판결은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에 시효중단의 재소가 제기된 사안인데, 상대적 소멸설에서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시효원용권을 소멸시키고 자신의 권리를 보전할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되어 시효중단 재소가 적법하다고 보게 된다. 반면 절대적 소멸설에서는 시효의 완성으로 권리가 이미 소멸하여 보전할 권리가 없을뿐더러,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가 여전히 의미를 갖는 경우에 해당하여 시효완성의 재소를 허용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상대적 소멸설의 견지에서 제2 대상판결의 결론에는 찬성하나, 그 판결이유를 보면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면서도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자는 것이어서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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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소액사건 실무를 하다 보면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심심찮게 마주하게 된다. 이는 보통 금융기관에서 대출금이나 카드대금 채권 등에 관하여 확정판결이나 이행권고결정, 지급명령 등 집행권원을 확보한 후에 해당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기 임박한 시점에 소멸시효의 완성을 저지하기 위하여 채무자를 상대로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다른 한편, 판결로 확정된 채권에 관하여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이미 경과하였음에도, 자산유동화회사 또는 채권추심업자 등이 금융기관 등 기존 채권자로부터 위와 같은 부실채권을 헐값에 대량으로 매수한 다음, 다수의 채무자들을 상대로 소멸시효 연장을 위하여 동일한 청구원인의 소를 제기하거나, 지급명령을 신청하였다가 소송으로 이행되는 경우가 상당수 발견된다.
소멸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아니한 전자의 경우에는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에 따라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적법한 것으로 보아 본안판단을 하는 것이 실무의 일반적인 태도이다. 그리고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된 후자의 경우 실무상 처리방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 것으로 보이는데, 첫째는 소의 이익이 없다고 보아 소를 각하하는 것이고(이것이 상대적으로 다수의 실무례인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소의 이익이 있다고 보아 본안판단을 하되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을 기다려 청구의 인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다만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의 경우 채무자들은 이미 경제적 능력을 상실하였거나 일정한 생활기반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일단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에 관하여 소의 이익을 인정하고 본안판단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대부분 자백간주나 공시송달로 판결이 선고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 항변을 하여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법원에서 위와 같은 두 가지 경우에 관하여 각각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두 개의 판결을 선고하였다. 첫 번째는 판결로 확정된 채권에 관하여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기 임박한 시점에 동일한 청구원인으로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를 적법한 것으로 인정한 대법원 2018. 7. 19. 선고 2018다22008 전원합의체 판결(이하 ‘제1 대상판결’이라 한다)이다. 이 판결은 대법원의 기존 판례를 재확인한 것이기는 하나, 그 과정에서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및 그에 대한 각각의 보충의견들 사이에 치열한 법리논쟁이 벌어진 사건이다. 두 번째는 판결로 확정된 채권에 관하여 이미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후에 동일한 청구원인으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가 제기된 경우에 이 또한 적법하다고 인정한 대법원 2019. 1. 17. 선고 2018다24349 판결(이하 ‘제2 대상판결’이라 한다)이다.
제1 대상판결에서는 채권이 한시성(限時性)을 가지는지 여부와 민법상 소멸시효중단사유로서의 재판상 청구를 1회만 허용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이 소멸시효제도의 본질과 함께 논의되었고, 아울러 그 논의결과를 바탕으로 확정된 승소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사안에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가 제기된 경우 권리보호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는지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제2 대상판결에서는 승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후소에 관하여 예외적으로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하는 기존 법리와 함께, 본안판단에 들어갔을 때 소멸시효 항변이 기판력의 시적 범위에 따라 차단되는지 여부 등의 설시되었다. 제1, 2 대상판결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판결에서 설시된 기판력과 소의 이익에 관한 법리는 물론이고,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와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논의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하에서는 ① 우선 제1, 2 대상판결의 사실관계와 소송의 경과 및 판시내용을 정리하고, ② 다음으로 기판력의 본질과 권리보호의 이익 및 기판력의 시적 범위와 차단효 등에 관한 논의를 살펴본 후, ③ 이어서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및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 등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고, ④ 제1, 2 대상판결에 대한 학계의 평가를 개관한 다음, 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여 제1, 2 대상판결에 대하여 검토의견을 밝히는 순서로 논의를 전개해나가기로 한다.
Ⅱ. 사안의 개요, 소송의 경과 및 대상판결의 내용
1. 제1 대상판결
가. 사안의 개요
A는 1995. 12.경 현대자동차로부터 쏘나타 승용차를 할부로 구입하면서 원고와 할부판매보증보험계약을 체결하였고, 피고는 위 보증보험계약에 따른 A의 채무를 연대보증하였다. A가 할부금을 연체하자, 원고는 현대자동차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였다. 원고는 A와 피고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의 소를 제기하여 1997. 4. 8. 승소판결을 받았고, 위 판결은 그 무렵 확정되었다. 원고는 2007. 1. 29. 피고를 상대로 위 판결에 따른 구상금 잔액을 청구하는 소를 다시 제기하여 2007. 2. 1. 청구취지와 같은 이행권고결정을 받았고, 위 이행권고결정은 2007. 2. 23. 확정되었다.
나. 소송의 경과
원고는 2016. 8. 19. 피고를 상대로 위 구상금 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을 위하여 동일한 청구원인의 소를 제기하였고, 1심 법원은 원고 전부 승소 판결을 선고하였다. 피고가 연대보증사실을 다투며 항소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피고의 주장이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며 피고의 항소를 기각하였다. 피고는 이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다. 제1 대상판결의 내용
1) 다수의견
다수의견은 ① 다른 소멸시효 중단사유인 압류․가압류나 승인 등의 경우 이를 1회로 제한하고 있지 않음에도, 유독 재판상 청구만 1회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보아야 할 합리적인 근거가 없는 점, ② 확정판결에 의한 채무라고 하더라도 채무자가 파산이나 회생제도를 통하여 이로부터 전부 또는 일부 벗어날 수 있는 이상, 채권자에게는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는 것이 균형에 맞는 점 등을 이유로 들어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에는 그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가 소의 이익이 있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그대로 유지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2) 대법관 김창석, 대법관 김신, 대법관 권순일, 대법관 박상옥의 반대의견
반대의견은 다수의견과 달리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고, 확정된 승소판결에 따른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여 그 시효중단을 위하여 후소가 제기된 경우에도 소의 이익이 없다고 보아 이를 각하하여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반대의견이 설시한 논거 중 주요 부분을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다수의견은 채권이 만족될 때까지 시효소멸을 방지해야 한다는 취지인데, 채권은 물권과 달리 소멸을 전제로 하는 한시성을 기본적 성질로 하고, 민법은 소멸시효 규정을 두어 만족되지 않은 채권의 소멸을 인정하고 있으므로, 다수의견의 위와 같은 접근은 채권의 본질과 민법 규정에 어긋난다.
나) 민법이 소멸시효제도와 함께 시효중단도 규정한 취지는 법률관계의 조기 안정을 추구하면서 채권자의 권리보호를 위한 장치를 마련하여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이익 균형을 맞춘 것이므로, 민법이 재판상 청구의 무한한 반복으로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채권을 상정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다수의견에 따르면 1년의 단기소멸시효에 걸리는 채권도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소를 제기하여 판결을 받으면 영원히 존속하는 채권이 되는데, 이는 소멸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우리 민법이 의도한 결과가 아니다.
다) 민사소송법상 이미 이행판결을 받아 유효한 집행권원을 가지고 있는 원고에게 다시 동일한 소송을 제기할 법적 이익은 인정되지 않는다. 민법 제170조는 재판상의 청구가 부적법하여 각하된 경우에는 시효중단의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여 적법한 재판상 청구만을 시효중단사유로 인정하고 있는데, 승소 확정판결이 이미 존재한다면 그 기판력 때문에 재판상 청구는 다시 주장할 수 없는 시효중단사유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있다. 게다가 다수의견이 말하는 ‘소멸시효에 임박한 시점’이 과연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할뿐더러, 기판력이라는 것은 본래 시간의 경과에 따라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항구적인 효력인데, 기판력 때문에 처음에는 없었던 재소의 권리보호의 이익이 시간이 지나 시효완성이 임박한 시점이 되면 다시 생겨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라) 다수의견은 다른 시효중단사유도 여러 번 할 수 있으므로 재판상 청구도 1회로 제한할 이유가 없다고 하나, 이미 유효한 압류, 가압류, 가처분이 있다면 이와 동일한 신청을 중복 제기하는 것은 부적법하여 허용되지 않는다(압류 후 채권의 일부 회수에 그쳤을 때 다른 재산에 압류가 허용되기는 하나, 이는 명시적 일부청구에 대한 판결 확정 후 나머지 청구가 허용되는 것처럼 소송법상 허용되기 때문에 문제삼을 것이 아니다). 승인은 채무자의 의사표시이므로 이를 제한할 이유가 없다. 최고는 민법 제174조에서 6개월 내에 재판상 청구 등을 한 때에만 시효중단 효력을 인정하여 이를 아무리 여러 번 하더라도 시효중단의 효력을 반복적으로 인정하기 않겠다고 단호히 선언하고 있다. 결국 시효중단 재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재판상 청구를 다른 시효중단사유와 달리 취급하는 것은 아니다.
마)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여 영구적으로 소멸하지 않는 채권의 존재를 인정하면, 각종 채권추심기관의 난립과 횡행을 부추겨 변제능력 없는 경제적 약자가 견뎌야 할 채무의 무게가 더욱 무거워지는 사회적 문제도 따른다. 어차피 강제집행이 더 이상 불가능한 채권이라면 이를 소멸시키는 것이 채권자로 하여금 10년마다 비용을 들여 소송을 제기하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하고, 채무자의 법적 불안을 제거하며, 부실채권의 전전양도 및 부당한 채권추심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와 보다 바람직하다.
3)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소영, 대법관 민유숙의 보충의견
위 보충의견은 다수의견의 논거를 보충하여 반대의견을 반박하는 견해를 밝혔는데, 그 주요 내용을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소멸시효의 중단은 권리행사에 해당하고, 민법에는 그 횟수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는데, 법령상 근거 없이 해석론으로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부당하다.
나) 반대의견은 민법이 다른 소멸시효중단 사유도 원칙적으로 1회만 시효중단효력을 인정하여 재판상 청구를 1회만 인정하는 것이 부당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하나의 압류로 채권 회수에 부족한 경우, 채무자의 다른 재산을 압류하여 다시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는 것이 현행법상 금지되지 않는다. 이는 가압류도 마찬가지이나, 다만 판례상 1회의 가압류만으로도 집행보전의 효력이 유지되는 한 시효중단의 효력이 계속되므로 굳이 가압류를 여러 번 할 필요가 없어 실무상 시효중단을 위한 가압류의 재신청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일 뿐이다. 나아가 최고도 이를 얼마든지 해서 시효중단의 효력을 얻을 수 있지만, 단지 그 후 재판상 청구를 한 경우 민법 제174조에 따라 소급하여 6개월 내에 한 최고시에 시효중단 효력이 발생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반대의견의 위와 같은 설시는 타당하지 않다.
다) 반대의견이 지적하는 경제적 약자 보호 문제에는 공감하나, 이는 시효중단의 재소를 불허하여 해결할 것이 아니라, 회생․파산, 상속포기와 한정승인, 불법채권추심 금지 등 현행법상 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아울러 대법원이 개별 사건에서 시효중단 재소의 권리보호이익 인정기준, 즉 소멸시효 완성 임박 시점이 언제인지 등에 관한 기준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방법으로 해결하여야 한다.
4) 다수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조재연의 보충의견
위 보충의견은 다수의견의 논거를 보충하여 반대의견을 반박하는 견해를 밝혔는데, 그 주요 내용을 요약․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가) 소멸시효제도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일정한 기간 행사하지 않은 자를 제재하는 것이다. 시효중단의 재소를 제기한 채권자는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자인데, 이 경우에도 소멸시효에 걸린다고 보는 것은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맞지 않고, 소멸시효 중단사유를 규정한 민법의 태도에도 배치된다. 권리가 있으면 법으로 보호하는 것이 원칙이다. ‘권리를 행사하는 채권자’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채무자’보다 당연히 더 보호받아야 한다.
나) 기판력은 전소와 후소 사이의 모순되는 결론을 피하고 그로써 불필요한 소송을 방지하기 위하여 인정되는 것이다. 후소 제기가 필요하고 전소와 모순되는 결론이 발생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이유로 후소 제기를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는 그 전형적인 경우이다. 현실에서 채권자가 확정판결을 받고도 10년이 지날 때까지 채권의 만족을 얻지 못한 사유를 보면, 채무자가 소재불명이거나 재산을 은닉하는 등 채권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채권의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는 방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판상 청구 외에는 없으므로,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전소 확정판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동일한 후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이익이 있는 것이다.
다) 독일 민법, 프랑스 민법․민사집행법, 유럽계약법원칙 등과 같이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을 10년 또는 그 이상으로 규정하는 외국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소멸시효 완성을 저지하기 위한 재소를 금지하지 않고 있다.
라) 채권자가 적극적으로 권리를 행사하여 판결을 받아놓았다는 이유로 10년이 지나면 재소가 금지되어 채권이 소멸한다는 반대의견이 과연 국민 일반의 법감정에 맞는 것인지, 그와 같은 결론이 국민의 경제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5) 반대의견에 대한 대법관 김창석의 보충의견
위 보충의견은 다수의견이 소멸시효제도에 대하여 전통적인 관점을 고수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① 유럽계약법원칙 제3부에서 판결이 확정된 채권에 관한 강제집행 시도나 승인을 시효기간의 새로운 진행사유로 인정하는 반면, 재판상 청구는 당초 진행되던 시효기간의 정지사유로 인정하고 있을 뿐인 점, ② 우리 민법의 해석으로도 재판상 청구를 1회로 제한하는 것이 가능한 점 등을 이유로 들어 반대의견과 같은 새로운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2. 제2 대상판결
가. 사안의 개요
피고는 2003. 5. 2. 원고의 중개로 천안시 성남면 신사리 소재 토지를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원고와 피고는 A에게 위 토지에 투자하라고 제안을 하여 A로부터 133,200,000원을 지급받았다. 그 후 A가 위 투자금의 반환을 요구하자, 원고는 피고의 요구로 2003. 11. 21. 피고와 함께 A의 처에게 위 투자금과 손실보상금 합계 183,200,000원을 반환하기로 약정하는 확인서를 작성해주었다.
원고는 위 확인서 작성으로 A로부터 독촉을 당하여 사업에 지장이 있었다면서 2005. 5. 10. 피고를 상대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05가단10513호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은 2005. 12. 22. 피고가 2006. 3. 10.까지 원고에게 25,000,000원을 지급하는 내용으로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하였고(이하 ‘이 사건 강제조정 결정’이라 한다), 이 사건 강제조정 결정은 2006. 1. 24. 확정되었다.
한편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06가단9930호로 천안시 직산읍 부송리 소재 빌라에 관하여 2004. 8. 30. 체결하였던 매매계약의 해제에 따른 매매대금의 반환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는데, 위 사건은 공시송달로 진행되어 2006. 9. 21. 피고로 하여금 원고에게 25,000,00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도록 명하는 판결이 선고되었다(이하 ‘이 사건 전소 판결’이라 하고, 이 사건 강제조정 결정과 이 사건 전소 판결을 합하여 ‘이 사건 전소 판결 등’이라 한다). 이 사건 전소 판결은 2006. 10. 17. 확정되었다.
나. 소송의 경과
원고는 2017. 4. 28. 이 사건 전소 판결 등에 따른 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을 위해 피고를 상대로 이 사건 전소 판결 등에 따른 금액의 지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1심 법원은,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이 다시 동일한 청구를 하는 경우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권리보호이익이 없는데, 원고가 이 사건 전소 판결 등이 확정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한 후에 소를 제기하였다는 이유로 원고의 소를 각하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2017. 11. 29. 선고 2017가단4528 판결).
원고는 위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항소심 법원도 위와 같은 이유로 원고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대전지방법원 2018. 3. 29. 선고 2017나8591 판결). 원고는 위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여 상고하였다.
다. 제2 대상판결의 내용
1)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1심 및 항소심 판결과 달리 원고가 이 사건 전소 판결 등이 확정되고 10년이 지나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제기하였으나, 그것만으로 위 소가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가) 확정된 승소판결에는 기판력이 있으므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전소의 상대방을 상대로 동일한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나, 예외적으로 확정판결에 의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하여 후소가 그 시효중단을 위하여 제기된 경우에는 소의 이익이 있다.
나) 한편 시효중단을 위한 후소의 판결은 전소의 승소 확정판결의 내용에 저촉되어서는 안 되므로, 후소 법원으로서는 그 확정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이 구비되어 있는지에 관하여 다시 심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위 후소 판결의 기판력은 후소의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발생하므로, 전소의 변론종결 후에 발생한 변제나 상계, 소멸시효 완성 등과 같은 채권의 소멸사유는 후소의 심리대상이 되고, 피고는 후소에서 그러한 사유를 들어 항변할 수 있으며, 피고의 항변이 이유 있는 경우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
다) 후소 법원으로서는 전소 판결이 확정된 후 소멸시효가 중단된 적이 있어 그 중단사유가 종료된 때로부터 새로이 진행된 소멸시효기간 경과가 임박하지 않아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단순히 후소가 전소 판결확정 후 10년이 지나 제기되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소의 이익이 없다고 하여 소를 각하하여서는 아니되고, 피고의 항변에 따라 원고의 채권이 소멸시효 완성으로 소멸하였는지에 관하여 본안판단을 하여야 한다.
2) 다만 대법원은, 위와 같이 원고의 소가 부적법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면서도, 피고가 원심에서 원고의 소가 이 사건 전소 판결 등이 확정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한 후에 제기되었다고 주장하여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였기 때문에,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에 환송할 경우 원고의 청구가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기각될 것이 분명하고, 이는 원고만이 상고한 이 사건에서 불이익변경금지원칙에 위반되어 허용되지 아니하므로, 원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하여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Ⅲ. 기판력의 본질과 권리보호이익 및 기판력의 시적 범위
1. 기판력의 본질
가. 문제의 소재
민사소송법은 제216조에서 확정판결은 기판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기판력의 의미에 관하여는 설명하고 있지 아니하므로, 기판력의 의미를 규명하는 것은 학설과 판례의 몫이다. 기판력의 본질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 기판력의 본질에 관한 견해 대립의 실익은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후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있다.
나. 학설
1) 실체법설
이 견해는 확정판결을 소송상 청구에 관하여 당사자 사이의 실체법상 관계를 형성하는 근거로 이해하고 있다. 실체법설에 따르면,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실체법상의 권리관계를 변경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실체관계와 관련이 없는 소송판결에 기판력을 인정하는 근거와 기판력이 원칙적으로 당사자 사이에만 미치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난점이 있고, 현재는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2) 소송법설
소송법설에 따르면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실체적인 권리관계를 변경시키는 효력이 아니라 후소를 심리하는 법관을 구속하는 힘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소송법설만 주장되고 있다. 소송법설은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후소 법관에게 구체적으로 어떠한 구속력을 가지는지에 관하여 다시 모순금지설과 반복금지설로 나누어진다.
가) 모순금지설
이 견해는 기판력이 재판기관의 판단을 동일하게 하기 위하여 별소에서 전소 확정판결에 저촉되는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력이라고 설명한다. 즉, 모순금지설은 기판력이 법원 사이의 판결의 통일이라는 요구에 근거한 소송법상 효력으로서, 후소 법원에 대하여 확정판결과 모순된 판단을 금지하는 효력이라고 본다.구체적으로 모순금지설에 따르면,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가 동일한 소를 제기하면 이미 권리보호를 받았으니 소의 이익이 없다고 보아 소를 각하하여야 하고, 반면 패소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가 동일한 소를 제기하는 경우 법원이 전소 판결과 모순되는 판단을 금지하는 구속력 때문에 청구기각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
나) 반복금지설
이 견해는 기판력의 본질을 동일한 소송을 금지하는 일사부재리의 요청에서 찾는다. 반복금지설에 의하면,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사건에 관하여 새로운 소가 제기된 경우 법관이 반복하여 재판을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아니하므로, 전소 확정판결의 결론이 원고 승소인지 패소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후소는 부적법한 것이 되고, 따라서 법원은 후소를 각하하여야 한다. 반복금지설은 모순금지설과 달리 후소가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서 각하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확정판결의 기판력의 존재가 그 자체로 하나의 소극적 소송요건이 되므로 후소가 각하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다. 판례
대법원은 ① 대법원 1979. 2. 13. 선고 78다2290 제4부 판결에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한 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므로 각하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② 대법원 1976. 12. 14. 선고 76다1488 판결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후소는 그와 모순되는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청구를 기각해야 한다고 판시하여, 모순금지설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였다. 그 후 대법원은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후소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여러 차례 같은 취지로 판시하였고, 현재까지 이러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라. 검토
1) 모순금지설은 반복금지설이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서로 다르지만 선결․모순관계에 있는 경우 전소 판결의 기판력이 후소에 미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고, 아울러 시효중단 등을 위해 특별히 재소를 허용해야 하는 경우의 근거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반면 반복금지설은 모순금지설이 전소 승소판결과 모순되지 않으려면 후소 법원도 동일한 승소판결을 선고하여야 함에도 소를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러면서 전소 판결이 원고 패소인 경우에는 후소 법원이 전소과 같이 청구기각판결을 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되지 못하다고 비판한다.
2) 살피건대, 반복금지설이 논리적 일관성에 있어 우수한 측면이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구체적 타당성을 위한 탄력적인 해석의 여지가 모순금지설에 비하여 다소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된다.
대법원은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동일하지 않아도 전소가 후소의 선결적 법률관계인 경우 전소 판결의 기판력이 후소에 미쳐 법원은 전소의 판단과 모순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동일하지 않아도 서로 정반대의 모순관계인 경우 전소 판결의 기판력이 후소에 미쳐 법원이 전소의 판단과 모순된 판단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하고 있다. 전소의 소송물이 후소의 소송물의 선결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모순금지설과 반복금지설이 모두 법원이 전소 판결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모순관계에 있는 경우에는 모순금지설은 후소 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는 입장이고, 반복금지설은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동일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후소를 각하하여야 한다고 한다. 모순금지설은 기판력의 본질이 전소 판결과 모순된 판단을 하는 것을 금지하는 효력이라고 설명하므로,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선결관계 또는 모순관계에 있는 경우 기판력이 미치는 근거와 효과를 설명하는 데 무리가 없다. 반면 반복금지설은 기판력의 본질을 동일한 소송의 반복을 막기 위하여 후소의 재판을 처음부터 허용하지 않는 효력이라고 전제하는 까닭에,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선결관계에 있어 법원이 전소 확정판결에 따라 실체관계 판단을 하여야 하는 경우 기판력이 어떻게 후소에 작용하는 것인지에 관하여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사실상 모순금지설과 동일한 설명을 할 수밖에 없는 난점이 있다. 나아가 예컨대 채무부존재확인의 소에서 채무가 일정액을 초과하여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확정되어 주문에 기재된 금액만큼의 채무의 존재와 이를 초과하는 채무의 부존재에 관하여 기판력이 발생하였고, 그 후 채권자가 채무자를 상대로 해당 금액만큼의 채무의 이행을 구하는 후소를 제기한 경우, 비록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모순관계이기는 하나, 채권자가 집행권원 확보를 위하여 제기한 후소의 적법성을 인정해주어야 하는데, 반복금지설의 논리에 따르면 이러한 경우 후소의 적법성을 인정할 근거를 제시하기 어렵다. 이처럼 반복금지설은 논리적 출발점을 동일한 소송의 금지라는 도그마에 둔 결과,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동일하지 아니한 선결관계와 모순관계의 경우 기판력이 작용하는 근거와 후소에 대한 효과 등을 설명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동일하지 않아도 선결․모순관계인 경우에는 기판력이 미친다는 판례의 입장이 기판력의 작용국면을 동일 소송물의 범위 밖으로 확장시킨 경우에 해당한다면, 그와 반대로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동일하여 당연히 후소에 기판력이 미치는 것이 원칙임에도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시효중단의 재소와 같이 일정한 경우에는 대법원이 예외적으로 전소 판결의 기판력에도 불구하고 후소가 허용된다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모순금지설에 따르면, 원고가 확정된 승소판결에도 불구하고 다시 소를 제기한 것은 나름의 필요성이 있을 것이므로, 이 경우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하여 후소를 허용하는 데 무리가 없고, 후소 법원은 전소 변론종결 후의 새로운 사유가 없는 한 전소와 마찬가지로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하면 되므로 기판력에 저촉되는 결과가 발생하지도 않는다. 반면 기판력이 하나의 소극적 소송요건이라는 반복금지설의 입장을 일관하는 경우, 아무리 원고에게 후소를 제기할 이익이 인정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전소 판결의 기판력이 소송물이 동일한 후소에 작용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므로, 법률에 명문의 규정도 없이 이미 존재하는 전소 판결의 기판력을 배제하고 예외적으로 후소가 허용된다는 해석론을 전개할 수 있는 논리적 공간이 그리 넓어 보이지는 않는다.
위와 같이 대법원이 선결․모순관계에는 기판력의 작용을 확장하고, 시효중단의 재소 등에는 기판력에도 불구하고 후소를 허용하는 유연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이론적인 도그마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반복금지설은 전소 판결의 결론과 상관없이 후소의 취급을 일관되게 할 수 있으나, 그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탄력적인 해석의 여지를 좁힌 까닭에 구체적 타당성을 충분히 도모하기는 다소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
3) 한편 반복금지설에서는 모순금지설이 논리적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나, 이는 모순금지설에 따를 때 전소 판결의 결과에 따라 후소 판결 주문이 달라진다는 결과만 보고 피상적으로 판단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오히려 기판력의 본질이 전소 판결과 모순된 결론을 방지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구체적인 사례에 대입시켜 보면, 모순금지설이야말로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내면서도, 기판력의 예외를 인정하지 않아 논리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모순금지설에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가 시효중단 등을 위하여 후소를 제기한 경우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고 하였으나, 논리적으로 이는 어디까지나 원고에게 후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이익을 예외적으로 긍정한 결과일 뿐이지, 전소 판결의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 예외적인 경우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시효중단 등을 위한 후소가 허용되는 경우에도 법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전소 판결과 동일하게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할 것이고, 이는 전소 판결의 기판력이 후소에 작용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4) 위와 같이 모순금지설은 ① 반복금지설에 비하여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과를 도모할 수 있는 탄력적인 해석의 여지를 보다 넓게 인정할 수 있고, ② 그러면서도 기판력의 작용에 관하여 논리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는 장점이 있으므로,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는 모순금지설이 보다 타당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2. 기판력이 미치는 후소의 권리보호이익
가. 소의 이익 또는 권리보호이익에 관한 일반론
1) 소의 이익의 개념
널리 소의 이익은 국가적․공익적 견지에서 무익한 소송을 통제하는 원리이고, 당사자의 견지에서 소송제도를 이용할 정당한 이익 또는 필요성을 말한다. 소의 이익의 문제는 과거 소권(訴權)이론 중 권리보호청구권설이 권리보호를 요구할 때 갖추어야 할 사항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파생물이기 때문에, 권리보호요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아가 소권이론 중 다른 견해들도 그와 같은 요건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소의 이익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판례도 ‘소의 이익’, ‘권리보호요건’, ’권리보호의 이익 또는 필요‘라는 표현을 널리 사용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소의 이익은 ① 청구의 내용이 본안판결을 받기에 적합한 일반적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권리보호의 자격), ② 원고가 청구에 대하여 본안판결을 구할 현실의 필요성이 있는지(권리보호의 이익 또는 필요), ③ 당사자가 본안판결을 받을 정당한 당사자인지(당사자적격)의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 중 좁은 의미의 소의 이익이란 청구의 측면에서 바라본 ①, ②만을 지칭한다.
2) 소의 이익 또는 권리보호이익의 구체적 내용
민사소송법에는 소의 이익의 판단기준에 관한 명문의 규정이 없으므로, 언제 소의 이익이 인정되는지는 해석론에 맡겨져 있다. 오늘날 학설과 판례에서 소송요건으로 요구하는 소의 이익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우선 각종의 소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소의 이익으로는, 재판상 청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한 청구일 것, 법률상․계약상 소제기금지사유가 없을 것, 특별구제절차(제소장애사유)가 없을 것, 원고가 이미 확정된 승소판결을 받은 경우가 아닐 것, 신의칙위반의 소 제기가 아닐 것 등이 있다. 다음으로 각종의 소의 특수한 소의 이익에 해당하는 소송요건으로는, 예컨대 확인의 소에서 현재의 권리관계나 법률관계를 대상으로 할 것, 확인의 이익이 있을 것 등이 있다.
3) 소의 이익이 흠결된 경우의 소송상 취급
소의 이익이 흠결된 경우 소송상의 취급에 관하여 과거 소권이론 중 권리보호청구권설은 소송요건과 권리보호요건을 구별하여 전자가 흠결되면 소를 각하하고 후자가 흠결되면 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오늘날의 통설은 이를 구별하지 않고 소의 이익을 모두 소송요건으로 보아 그 흠결이 있으면 소를 각하하여야 한다고 본다.
대법원은 과거 권리보호청구권설에 입각하여 소의 이익이 없는 경우 청구기각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소를 각하하여야 한다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 승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후소의 취급에 관한 대법원 판례
1) 모순금지설에 따른 권리보호이익 부정과 소 각하
대법원은 전소 승소판결을 받은 원고가 동일한 소송물에 관하여 제기한 신소는 원칙적으로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이를 각하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기판력의 본질에 관한 모순금지설은 법원이 확정판결과 모순된 판단을 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어서 승소한 원고가 동일한 후소를 제기해도 법원은 동일한 판결을 할 수밖에 없어 결국 권리보호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후소를 각하해야 하는 입장이고, 반복금지설은 기판력의 존재 자체가 소극적 소송요건이어서 권리보호이익을 따지지 않고 곧바로 후소를 각하해야 한다는 입장이므로, 위와 같은 대법원의 태도는 패소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가 후소를 제기한 경우의 취급을 살펴볼 필요 없이 모순금지설에 따르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 예외적으로 후소의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되는 사례
가) 대법원 판례에서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
대법원은 확정된 승소판결을 받은 전소와 동일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를 소송물로 하는 후소는 권리보호의 이익이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이를 각하하여야 한다고 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는 후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의 이익을 인정하고 있다.
⑴ 대법원은 원고가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채권의 소멸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는 허용하고 있다. 대법원이 확정된 승소판결의 기판력에도 불구하고 시효중단을 위해 제기된 후소의 권리보호이익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례는 대법원 1987. 11. 10. 선고 87다카1761 판결인데, 대법원은 이를 시작으로 승소판결이 확정되고 민법 제165조에 따른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한 경우에는 동일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하여 신소를 제기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일관되게 판시하여, 현재까지 위와 같은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나아가 대법원은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이후에도 일단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여 본안판단을 하여야 하고, 다만 피고는 전소 확정판결의 변론종결 후의 사유인 소멸시효 항변을 할 수 있으며, 법원은 그 항변이 이유 있는 경우에는 전소 확정판결과 달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고 한다.
⑵ 대법원은 전소 확정판결의 판결원본이 멸실되어 집행문을 부여받을 수 없게 된 경우에는 그와 동일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한 후소라고 하더라도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된다고 한다.
⑶ 대법원은 승소 확정판결이나 화해조서의 내용이 특정되지 아니하여 집행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원고가 동일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하여 후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한다.
나) 후소의 적법성을 인정하는 이론적 근거
이처럼 대법원이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가 동일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하여 후소가 제기되었음에도 위와 같은 경우에 예외적으로 후소를 적법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전소 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사건에서 후소를 어떻게 취급할지에 관하여 모순금지설과 같은 입장을 취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달리 기판력의 존재 자체를 하나의 소극적 소송요건으로 보는 반복금지설에서는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후소가 적법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반복금지설을 취하는 전제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위해 후소의 제기를 허용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에는 기판력의 작용국면이나 범위를 제한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전소와 후소의 당사자와 소송물이 완전히 동일한 경우에는 이마저도 곤란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법원이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모순금지설과 동일한 입장을 취한 것은 전소 판결의 기판력이 작용하는 사건에서 후소의 권리보호이익이라는 소송요건을 탄력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예외적으로 후소의 적법성을 인정하여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 예외적인 후소 허용에 관한 모순금지설과 반복금지설의 실질적 차이
기판력의 본질에 관한 학설 중 반복금지설보다는 모순금지설이 전소 확정판결과 동일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에 관한 후소의 제기를 허용하는 논리적인 근거를 설명하기에 용이함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다만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실제로 대법원이 전소 확정판결과 동일한 권리관계 또는 법률관계에 관하여 후소의 제기를 허용한 예외적인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하나씩 살펴보면, 확정된 승소판결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후소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모순금지설과 반복금지설 사이에 실질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는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뿐임을 알 수 있다.
⑴ 우선 판결원본이 멸실되어 집행문을 부여받을 수 없는 경우에는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범위를 사후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모순금지설에 의하든 반복금지설에 의하든 전소 확정판결의 존재를 이유로 후소를 각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판결원본이 전자적 방법으로 등록되어 전자장치에 보관되고 있으므로, 현실적으로 그와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 경우는 예외적으로 후소를 허용한 것이 모순금지설과 반복금지설 중 어느 견해에 따른 것인지를 따지는 것이 별다른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⑵ 다음으로 전소 확정판결에서 인도나 소유권이전등기를 명한 목적물의 기재 등이 불분명하여 그에 기한 강제집행 또는 등기이전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동일한 소송물의 후소를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례에 관하여 본다.
먼저 전소 확정판결의 주문에서 인도 등을 명한 목적물의 기재가 다소 불명확하다고 하더라도, 기록을 검토하여 후소 청구취지에 기재된 인도 등의 목적물과 서로 동일성을 인정할 수 있는 경우라면, 굳이 후소의 제기를 허용하여 번거롭게 변론기일을 열고 판결을 선고하는 절차를 반복하기보다는, 판결의 경정을 통하여 손쉽게 전소 판결 주문의 오류를 바로잡아 원고로 하여금 강제집행에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달리 기록을 검토해보아도 전소 확정판결의 주문에 기재된 인도 등의 목적물과 후소 청구취지에 기재된 인도 등의 목적물 사이에 동일성을 쉽사리 인정할 수 없는 경우라면, 전소와 후소의 소송물이 동일하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처음부터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후소에 미친다고 할 수 없다. 결국 위와 같은 경우는 반복금지설에 의하더라도 후소의 제기가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되지 아니하여 허용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후소의 허용 여부에 관하여 모순금지설과 반복금지설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나타나는 사례라고 보기 어렵다.
⑶ 마지막으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에 관하여 본다. 모순금지설을 취하는 대법원 판례가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거나, 아예 이미 경과한 경우에 원고에게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보아 후소를 허용하고 있음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모순금지설을 취하는 학설도 판례의 태도에 동조하여 소멸시효기간 경과가 임박한 경우에는 시효중단을 위해 다시 소를 제기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를 부적법하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편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반복금지설을 취하면서도 소멸시효완성이 임박한 경우와 같이 채권자 보호를 위하여 필요한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는 기판력 제도의 취지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채권자에게 재소의 이익을 인정하여 후소의 제기를 허용하자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반복금지설은 기판력의 존재를 하나의 소극적 소송요건으로 보아 그와 별도로 소의 이익 또는 권리보호이익의 존재 여부를 따질 필요 없이 후소를 각하하자는 것이므로, 채권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 예외적으로 재소의 이익을 인정하자는 위 견해는 반복금지설의 이론적 체계와 조화되기 어렵고, 사실상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에 관하여는 권리보호이익이 있는 경우 이를 허용하자는 모순금지설의 견해와 다를 바 없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반복금지설은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에서 소극적 소송요건인 전소 판결의 기판력을 배제하는 근거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는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모순금지설을 취하는 경우에 비로소 이를 허용할 여지가 생긴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3. 기판력의 시적 범위와 후소 법원의 심리대상
가. 기판력의 시적 범위와 차단효(또는 실권효)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변론종결시가 그 표준시가 된다. 그것은 종국판결에서 판단자료는 변론종결시까지 제출된 것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고, 이는 청구이의의 소에서 이의원인을 변론종결 후의 사유로 한정하는 민사소송법 제44조 제2항이나, 기판력의 주관적 범위를 당사자와 변론종결 후의 승계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같은 법 제218조 제1항 등의 규정에 비추어 명백하다.
확정판결의 기판력은 전소의 변론종결 이전에 당사자가 주장하였거나 주장할 수 있었던 모든 공격방어방법에 미치고, 전소에서 당사자가 그 공격방어방법을 알고서 주장하지 못하였는지 또는 알지 못한 데 과실이 있는지 묻지 아니한다. 따라서 확정판결에 의하여 그 존재가 인정된 채권에 대하여는 피고가 그 채무의 불성립을 주장할 수 없고, 변론종결시에 존재하였던 변제, 면제, 시효소멸, 상속포기 등 채무소멸사유를 내세워 이행의무를 면할 수 없다. 위와 같은 기판력의 작용을 실권효 또는 차단효라 한다.
한편 변론종결 후의 새로운 사유는 기판력의 시적 범위에 의해 차단되지 아니하므로, 변론종결 후에 채무소멸사유가 생겼다면 채무자는 이를 내세워 청구이의의 소 등을 통하여 확정판결의 집행력을 배제하고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 변론종결 후에 발생한 새로운 사유가 있다면 전소에서 패소한 원고도 신소를 제기할 수 있으며, 법원도 달리 판단할 수 있다. 다만 이때 변론종결 이후에 발생한 새로운 사유란 새로운 사실관계를 말하는 것일 뿐이고, 법률․판례의 변경, 법률의 위헌결정, 기초가 된 행정처분의 변경 등은 여기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나. 승소한 원고의 재소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 후소 법원의 심리대상
대법원 판례에 따라 확정된 승소판결의 기판력이 미치는 사건에 대하여 소멸시효중단 등을 위하여 예외적으로 후소가 허용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후소의 판결은 전소 확정판결의 내용에 저촉되어서는 안 되므로, 후소 법원은 그 확정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모든 요건이 구비되어 있는지에 관하여 다시 심리할 수 없다.
다만 앞서 본 바와 같이, 전소의 변론종결 후에 발생한 변제, 상계, 면제, 소멸시효의 완성 등과 같은 채권소멸사유는 후소 법원의 심리대상이 된다. 이는 기판력의 시적 범위에 비추어 당연한 결과이다. 제2 대상판결에서는 이러한 법리를 근거로 원고가 전소 판결 확정일로부터 10년이 경과한 후에 후소를 제기하였으므로 전소 확정판결에 따른 채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는 피고의 항변을 받아들여, 전소 확정판결과 달리 원고의 청구가 이유 없다고 판단하였다.
한편 이러한 경우에도 앞에서 본 것처럼 법률이나 판례의 변경은 전소 변론종결 후에 발생한 새로운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승소판결이 확정된 후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의 변경으로 그에 따른 지연손해금 이율이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선행 승소 확정판결의 효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어서, 확정된 선행판결과 다르게 변경된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상의 지연손해금 이율을 적용하여 선행판결과 다른 금액을 원고의 채권액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Ⅳ.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와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
1.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가. 문제의 소재
소멸시효는 권리자를 희생시켜 의무자를 보호하는 제도이다. 권리자를 보호하는 민법의 기본입장에 어긋남에도 시효제도를 인정하는 이유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구체적인 경우에 소멸시효의 적용 여부와 범위 등에 관한 판단이 달라진다.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를 검토하는 실익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 종래의 통설에 따른 시효제도의 존재이유
종래의 통설은 시효제도의 존재이유가 ① 사회질서의 유지, ② 입증곤란의 구제, ③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에 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통설은 일정한 사실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되면 사회는 이를 진실한 것으로 믿고 질서가 형성되는데, 이를 일시에 뒤집으면 거래안전이 위협받고 질서가 무너지므로, 법률이 일정기간 계속된 사실상태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시효제도의 첫 번째 존재이유라고 한다. 그리고 통설은 사실상태가 오래 계속되면 권리관계에 관한 증거가 없어지기 쉬워 정당한 권리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 당사자에게 가혹할 수 있고, 오랜 기간 지속된 사실상태는 정당한 권리관계에 부합하는 것일 개연성이 높으므로, 현존하는 사실상태를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입증의 곤란을 구제하는 것이 시효제도의 두 번째 존재이유라고 한다. 나아가 통설은 오랜 기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은 자는 이른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로서, 법률이 이러한 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자의 권리 행사로 법적 안정성이 위협받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것이 시효제도의 세 번째 존재이유라고 설명한다.
통설은 시효제도의 세 가지 존재이유 중 ①은 주로 취득시효에, ②와 ③은 주로 소멸시효에 관한 근거라고 분류하면서, 법적 안정성이 시효제도를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하고 있고, 민법은 구체적 타당성을 희생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법적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다. 다른 학설에서 제시되는 시효제도의 존재이유
위와 같은 통설에 대하여, 시효제도의 존재이유로 ① 입증곤란의 구제와 ② 의무자의 신뢰 보호를 제시하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는 통설이 제시하는 시효제도의 존재이유 중 사회질서의 유지에 대하여, 권리관계의 당사자 외에 제3자의 보호는 시효제도의 2차적 효과에 불과하여 시효제도가 직접 사회질서에 이바지한다고 보기 어렵고, 나아가 통설이 시효제도의 존재이유 중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를 드는 것에 대하여도 권리자가 상당한 기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의무자가 그 의무를 면하거나 무권리자가 권리를 취득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기에는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이 견해는 소멸시효제도의 중점은 권리자로부터 정당한 권리를 빼앗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의무자에게 대체로는 근거 없는 청구에 대하여 실체에 들어감이 없이 방어할 수 있는 보호수단을 부여하려는 데 있다고 설명하면서, 시효제도의 첫 번째 존재이유로 입증곤란의 구제를 들고 있다.
다만 이 견해는 의무자가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거나 점유자가 무권리자임이 명백한 경우에도 시효제도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 현상은 입증곤란의 구제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이 경우에는 의무자의 신뢰 보호라는 관점을 도입하여야 한다고 한다. 즉, 이 견해는 권리의 불행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의무자로서는 더 이상 청구를 받지 않으리라는 신뢰를 가지게 되고, 이러한 신뢰가 축적된 후에 권리자가 뒤늦게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의무자에게 가혹한 결과가 되므로, 소멸시효제도는 의무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하여 어느 시점 이후의 권리행사를 제한하는 기능을 한다고 설명한다.
라. 헌법재판소 판례
헌법재판소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가 ① 오랫동안 계속된 사실상태를 기초로 형성된 사회질서의 유지, ② 권리관계를 입증할 증거의 소멸에 따른 채무자의 입증곤란 구제와 이중변제 방지, ③ 채권자의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와 채무자의 정당한 신뢰 보호에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마.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에 대한 검토
1) 종래의 통설이 시효제도의 존재이유라고 제시하는 세 가지 중 사회질서의 유지는 통설 스스로도 주로 취득시효에 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을뿐더러, 소멸시효제도가 권리관계의 당사자 외의 제3자를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는 학설의 비판도 일리가 있어 이를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로 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2) 한편 시간의 경과에 따라 권리관계를 정확히 밝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현존하는 사실관계가 권리관계에 부합할 개연성이 높다고 보아 이를 보호하여 입증의 곤란을 구제하는 것이 소멸시효제도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입장은 통설을 비롯한 여러 학설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관점인데, 현실의 소송에서 소멸시효제도가 가지는 기능과 역할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앞서 본 학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소멸시효제도는 권리자로부터 정당한 권리를 빼앗는 데 그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자에게 근거 없는 청구에 대하여 실체적으로 그 당부를 따지는 수고를 덜어주어 이를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보호수단을 부여하는 것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점에서 입증곤란의 구제가 소멸시효의 중요한 존재이유 중 하나라는 학설의 입장에 찬동한다.
3) 나아가 통설이 시효제도의 세 번째 존재이유로 들고 있는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에 관하여 보면, 앞에서 본 학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오랫동안 지속된 권리의 불행사가 과연 그 자체로 권리의 소멸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제재를 받을 만큼의 잘못인지에 관하여 의문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입증곤란 구제나 의무자의 신뢰 보호 등을 위하여 소멸시효제도를 인정하는 이상 그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권리자에게는 권리의 소멸이라는 불이익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러한 불이익을 단순히 소멸시효제도가 의무자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반사적 효과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보다는, 그 실체를 적극적으로 인정하여 이것 또한 소멸시효제도가 가지는 취지 중 하나라고 설명하는 것이 소멸시효제도가 그 보호를 받는 의무자에게는 물론이고 그로 인하여 권리를 잃는 권리자에게도 공히 설득력을 가지게 하는 방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가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에 해당한다는 통설의 입장에 찬성한다.
4) 마지막으로 일부 학설에서 시효제도의 존재이유 중 하나로 들고 있는 의무자의 신뢰 보호에 관하여 살펴본다. 소멸시효제도의 존재로 인하여 때때로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명백한 자가 그 의무를 면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데,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를 입증의 곤란에서 구제하여 의무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에서만 찾아서는 이러한 결과를 설명하기 곤란하니, 차제에 소멸시효제도에 장기간의 권리 불행사로 형성된 의무자의 신뢰를 보호하는 취지도 포함된다고 설명하는 것이 보다 설득력이 있다는 위 학설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우선 정당한 권리관계에 따를 때 의무를 부담하는 것이 명백한 자가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써서 권리자로 하여금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사실상의 장애상태를 만들거나 그에 일조한 경우에는 권리의 불행사 상태가 아무리 장기간 지속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의무자의 신뢰가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이미 권리자가 재판상 청구라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할 의사를 명백히 밝혔고, 그 결과 의무의 이행을 명하거나 의무의 존재를 확인하는 판결이 확정되어 의무자가 의무의 존재와 범위를 뚜렷이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경우라면, 설령 권리자가 그 후 상당한 기간 강제집행 등 추가적인 권리실현행위에 나아가지 아니하였다고 하더라도, 그에 관한 의무자의 신뢰가 보호받을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기는 다소 곤란해 보인다. 이러한 경우까지 소멸시효제도가 의무자의 신뢰를 보호하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위 두 가지 경우 중 첫 번째는 의무자의 부정한 행위로 인한 것이어서 그 사유가 존재하는 것 자체로 의무자의 신뢰가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할 수 있는 반면, 두 번째는 단순히 확정판결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의무자의 신뢰가 무조건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단정하여서는 아니되고, 판결확정 이후에 또다시 권리불행사 상태가 지속된 기간, 그동안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권리가 실현되지 못한 원인 등 여러 가지 사정들을 살펴 판결의 확정에도 불구하고 그 후에 지속된 권리불행사 상태에 대한 의무자의 신뢰를 정당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아울러 판단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사견으로는 기본적으로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에 의무자의 신뢰 보호가 포함되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이 경우 소멸시효제도가 보호하는 의무자의 신뢰는 법으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정당한 신뢰에 한정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유로 의무자의 신뢰 보호를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로 제시하는 학설에 대하여는, 이를 ‘의무자의 정당한 신뢰 보호’로 제한적으로 이해하는 한도에서 찬성하는 입장을 취하기로 한다.
5) 위에서 검토한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로는 통설과 같이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를 우선 제시할 수 있다. 아울러 학설은 그 이외에 의무자의 신뢰 보호를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로 들고 있는데, 이는 의무자의 정당한 신뢰 보호로 제한해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는 ① 입증곤란의 구제, ②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 ③ 의무자의 정당한 신뢰 보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
가. 문제의 소재
민법은 제167조에서 소멸시효는 그 기산일에 소급하여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달리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대하여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소멸시효 완성으로 발생하는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오늘날의 학설은 대체로 절대적 소멸설과 상대적 소멸설이 주장되고 있다.
나. 학설의 내용
1) 절대적 소멸설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권리가 당연히 소멸한다는 입장이다. 이 견해는 민법이 의용민법과 달리 시효의 원용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민법 제369조, 제766조 제1항, 부칙 제8조 제1항 등에서 소멸시효 완성으로 권리가 소멸한다는 취지의 명문 규정을 두고 있음을 그 주된 근거로 든다.
2) 상대적 소멸설
상대적 소멸설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어도 당사자가 이를 원용할 권리가 생기는 것에 불과하고, 당사자가 그 원용권을 행사하여야 비로소 권리가 소멸하는 효과가 발생하며, 이때 당사자가 소멸시효를 원용하는 권리는 일종의 형성권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이 견해는 ① 절대적 소멸설에 의하면 당사자가 원하지 않아도 법원이 직권으로 그 권리가 소멸한 것으로 보고 재판해야 하는데, 이는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점, ② 절대적 소멸설에 의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 채무자가 그 사실을 모르고 변제한 때에는 비채변제가 되어 그 반환을 청구할 수 없게 되나, 이는 사회관념에 어긋나는 점, ③ 절대적 소멸설은 시효이익의 포기를 설명할 수 없는 점, ④ 절대적 소멸설은 채무자가 간계를 써서 신의칙에 반하는 방법으로 시효중단을 방해한 경우에도 시효의 완성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는 정의관념에 반하는 점, ⑤ 우리 민법에서는 등기된 물권도 소멸시효에 걸리는데, 등기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기간의 경과만으로 물권이 소멸한다는 것은 부당한 점 등의 논거를 제시한다.
다. 두 학설이 대립하는 지점
1) 시효의 원용과 변론주의
가) 절대적 소멸설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권리가 소멸하였다고 하더라도 민사소송법이 변론주의를 취하고 있어 소멸시효의 이익을 받는 자가 시효의 완성으로 권리가 소멸하였음을 소송상의 공격방어방법으로 제출하지 않으면 그 이익이 고려되지 아니하므로, 절대적 소멸설을 따르든 상대적 소멸설을 따르든 법원이 당사자의 원용이 없는 한 직권으로 소멸시효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마찬가지여서, 그 한도에서 두 견해 사이에 실제적인 차이는 없다고 한다.
나) 이에 대하여 상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견해는, 민사소송법상 변론주의에서 절대적 소멸설의 위와 같은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즉, 변론주의 하에서 법원은 당사자의 주장으로 주요사실이 소송에 현출되지 않는 한 이를 판결의 기초로 삼을 수 없지만, 이때 주요사실을 반드시 그 이익을 받을 자가 주장하여야 한다고 볼 필요는 없고, 이른바 주장 공통의 원칙에 따라 상대방의 주장에서 해당 주요사실이 현출되더라도 법원은 이를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 견해는 실체법상 항변이나 형성권이 아닌 단순한 소송법상의 항변의 경우에는 그 이익을 받는 자가 이를 주장하지 아니하더라도 당사자 중 누군가가 그 요건사실을 주장하기만 하면 법원은 위 항변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채권자인 원고가 채무자인 피고를 상대로 소를 제기하면서 청구원인에 권리의 발생시점과 소멸시효기간을 알 수 있는 사실을 포함시켜 주장하였고, 그 주장 자체로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사실이 명백하다면,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지 아니하였더라도, 법원이 직권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인정하여 원고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결과가 된다. 이 견해는 이러한 결과는 누가 보아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론일 것이므로, 이를 통하여 절대적 소멸설이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를 변론주의와 결부시켜 실체관계와 재판결과 사이의 모순을 정당화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 살피건대, 원고가 채무의 이행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는 경우 청구원인에 권리발생의 요건사실이 포함되어 있어야 하므로, 이로부터 권리가 언제 발생했는지, 그 권리가 몇 년의 소멸시효에 걸리는지 등에 관한 주요사실들이 소송상 현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법원이 피고의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권으로 소멸시효를 고려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변론주의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채권소멸사유가 실제 존재함에도 이를 원용하는 피고의 항변이 없는 까닭에 변론주의 원칙에 따라 채권소멸사유가 소송에 고려되지 아니하여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되고, 그 결과 실체관계와 재판결과가 일치하지 않게 되는 경우는 비단 소멸시효에서뿐만이 아니라, (채무자의 원용이 없어도 실체법상 채권소멸효과가 당연히 발생함에 이견이 없는) 변제나 면제 등 다른 채권소멸사유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경우 주장 공통의 원칙에 따라 원고의 청구원인에 소멸시효 완성의 요건사실이 포함되어 소송에 현출되기만 하면 법원이 직권으로 이를 고려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해야 하는 결과가 발생한다는 상대적 소멸설의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오히려 절대적 소멸설과 상대적 소멸설 중 어느 쪽을 따르든 변론주의 원칙에 따라 법원은 당사자의 원용 없이는 시효완성을 고려하여 판결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므로, 그 한도에서는 두 견해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는 입장에 동의한다.
2)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를 변제한 경우의 취급
상대적 소멸설에 의하면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원용하지 않는 한 채권이 존속하므로 채무자가 시효완성을 알았든 몰랐든 채무를 변제한 경우 유효한 변제가 된다고 한다. 한편 절대적 소멸설에서도 채무자가 시효완성을 알고 변제한 경우에는 시효이익의 포기가 되어 변제가 유효하고, 시효완성을 모르고 변제한 경우는 도의관념에 적합한 비채변제(민법 제744조)가 되어 역시 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보므로, 두 견해는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상대적 소멸설에서는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은 시효완성으로 권리가 소멸해도 도덕적 의무는 남아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정합적 해석인지는 의문이라고 비판한다.
3) 시효이익의 포기
상대적 소멸설에서는 시효이익의 포기는 곧 시효원용권의 포기이며, 이로써 권리는 처음부터 소멸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한편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권리가 소멸한다고 보는 절대적 소멸설에서는 시효이익의 포기로 권리가 소급적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쉽사리 설명하기 어렵다.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학설도 시효이익의 포기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대체로 시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면서도 시효이익 포기에 관하여 법률이 채무자의 일방적 의사표시에 특별한 효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족하기 때문에 딱히 시효이익의 포기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견해도 있다.
라. 판례의 태도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판례의 태도는 일반적으로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으나,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와 상대적 소멸설을 따르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혼재되어 있다.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대법원 판례는 ① 소멸시효 완성으로 권리가 소멸한다는 절대적 소멸설의 원칙을 선언한 판례, ② 소멸시효 완성으로 권리가 소멸하나 변론주의에 따라 당사자의 항변이 있어야 한다는 판례, ③ 시효원용권자의 개념을 채택하여 상대적 소멸설에 근접한 것으로 해석되는 판례로 나누어볼 수 있다.
1) 절대적 소멸설의 원칙을 선언한 판례
가) 대법원 1966. 1. 31. 선고 65다2445 판결은 당사자의 원용이 없어도 시효의 완성으로 채무는 당연히 소멸하므로 그에 기하여 한 가압류는 불법행위가 되고, 가압류 당시 시효의 원용이 없었더라도 가압류채권자에게 과실이 있다고 판시하였는데, 이는 절대적 소멸설에 따른 전형적인 판례라고 할 수 있다.
나) 대법원 1978. 10. 10. 선고 78다910 판결은 부동산의 근저당권에 기한 경매개시결정 이전에 그 피담보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으나 경매절차가 진행되어 경락대금이 완납된 후, 부동산의 원래 소유자인 원고가 근저당권자를 상대로 근저당권설정등기의 말소를 구한 사안에서, 위 경매개시결정 당시에 근저당권은 피담보채권의 소멸로 이미 무효인 상태였으며, 이에 기한 경매절차에서 경락대금이 완납되더라도 경락인이 경매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는데, 이는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한 때 채권이 소멸한다는 상대적 소멸설로는 설명하기 어려워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 판례로 평가된다. 근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의 소멸시효가 경매개시결정 이전에 이미 완성된 경우라면 이로써 피담보채권이 소멸하여 근저당권이 무효가 되므로, 설령 소멸시효의 원용이 경매개시결정 이후에 있었어도 경락인은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다) 대법원 1985. 5. 14. 선고 83누655 판결은 구 국세기본법(1984. 8. 7. 법률 제374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7조 제1항에서 규정한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이후에 과세한 경우, 이는 국가의 조세부과권이나 납세의무자의 납세의무가 이미 소멸한 후에 이루어진 과세처분이어서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존재하여 당연무효라고 판시하였는데, 위 판결도 소멸시효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당사자의 원용 없이 당연히 권리가 소멸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에 선 판례로 평가된다.
2) 절대적 소멸설의 원칙을 따르면서 변론주의를 적용한 판례
가) 대법원 1962. 10. 11. 선고 62다466 판결은 ‘새 민법이 시효이익 사전 포기 금지에 관한 규정은 그대로 두고 시효의 원용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였다거나 법률행위에 의한 소멸시효 배제․연장․가중을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했다고 하여, 당사자가 시효완성 후 소송에서 시효완성으로 채권이 소멸되었음을 항변으로 주장하지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법원이 시효완성의 사실을 직권으로 인정하여 그 이익을 부여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는 아니하며, 이 경우 시효의 원용 또는 시효완성의 항변은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가 없고, 시효완성 항변의 취지로 해석되는 것이면 족하다’고 판시하여, 절대적 소멸설에 따르면서도 변론주의 원칙에 따라 시효완성의 항변 또는 원용을 요구하였다.
나) 위 판결 이후 다수의 대법원 판결들은 당사자의 원용이 없어도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채권은 당연히 소멸하고, 다만 변론주의 원칙에 따라 소멸시효의 이익을 받는 자가 이를 포기하지 않고 실제 소송에서 권리를 주장하는 자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이익을 받겠다는 뜻의 항변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의사에 반하여 재판할 수 없으며, 소멸시효 완성의 요건사실이 변론에 현출된 경우에도 당사자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지 않는 한 이를 직권으로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 1980. 1. 29. 선고 79다1863 판결에서 피고가 ‘원고는 민법 부칙 제10조 제1항에 의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지 아니하여 부동산 소유권을 상실하였다’는 항변만을 한 경우에 원심이 원고의 소유권이전등기청구권이 소멸시효기간 만료로 소멸하였다고 판단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시한 것은 위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3) 상대적 소멸설에 근접한 것으로 해석되는 판례
가) 대법원 1979. 2. 13. 선고 78다2157 판결은 ‘당사자의 원용이 없어도 시효완성의 사실로써 채무는 당연히 소멸되는 것이고, 다만 변론주의 원칙상 소멸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가 그것을 포기하지 않고 실제 소송에서 권리를 주장하는 자에 대항하여 소멸시효의 이익을 받겠다고 항변하지 않는 이상 그 의사에 반하여 재판할 수 없을 뿐이다’라고 판시하여 위에서 살펴본 절대적 소멸설에 변론주의 원칙을 접목한 입장을 취하면서도, 다른 한편 ‘본건에서 피고는 소멸시효완성으로 직접 의무를 면하게 되는 당사자로서 그 소멸시효의 이익을 받겠다는 뜻을 항변할 수 있는 자라 할 것이다’라고 판시함으로써 소멸시효의 이익을 받겠다는 항변을 할 수 없는 자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데, 이러한 판시는 소멸시효 항변을 제출할 수 있는 자를 제한하는 것이어서 절대적 소멸설에 따른 결론이라고 보기 어렵다. 즉, 이 판결은 변론주의 원칙과 접목된 절대적 소멸설과 같이 법원이 소멸시효가 완성된 사실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다른 항변과는 다르게 실체법에 따라 정해지는 시효이익을 받을 자의 항변을 요한다고 보아 이를 단순한 공격방어방법과 달리 취급하고 있으므로, 상대적 소멸설에 근접한 판례로 해석된다.
나아가 대법원 1995. 7. 11. 선고 95다12446 판결은 ‘소멸시효를 원용할 수 있는 자는 권리의 소멸에 의하여 직접 이익을 받는 자에 한정되는데, 채권담보 목적의 소유권이전청구권보전가등기가 마쳐진 부동산을 양수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제3자는 그 가등기의 피담보채무의 채무자가 아니라도 위 피담보채무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원용할 수 있고, 이는 채무자의 소멸시효원용권에 기초한 것이 아닌 독자적인 것으로 반드시 채무자를 대위하여서만 시효이익을 원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판시하였다. 이 판결은 앞서 본 78다2157 판결과 마찬가지로 소멸시효의 항변을 제출할 수 있는 자의 범위를 한정하면서도, 그 인정범위를 확대한 사례로 평가되고, 역시 상대적 소멸설에 근접한 판례로 분류된다.
나) 대법원 1992. 11. 20. 선고 92다35899 판결은 ‘채권자대위권에 기한 청구에서 제3채무자는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가지는 항변으로 대항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이를 원용할 수 있는 자는 시효의 이익을 직접 받는 자뿐이므로 채권자대위소송의 제3채무자는 이를 행사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채권자대위소송에서 제3채무자가 피보전채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는 항변을 하는 것을 불허하였다. 위와 같은 판시는 대법원이 절대적 소멸설에 따라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채무가 소멸한다고 하면서도 이를 주장하려는 제3채무자의 소송상 항변을 금지한 것으로, 전형적인 절대석 소멸설은 물론이고 변론주의에 따라 시효완성의 항변이 필요하다고 보는 수정된 절대적 소멸설과도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것이어서, 상대적 소멸설에 근접하였다고 평가된다.
다) 대법원 1997. 12. 26. 선고 97다22676 판결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이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시효로 인하여 채무가 소멸되는 결과 직접적인 이익을 받는 사람에 한정되므로, 채무자에 대한 일반채권자는 자기의 채권을 보전하기 위하여 필요한 한도 내에서 채무자를 대위하여 소멸시효 주장을 할 수 있고, 다만 채권자의 지위에서 독자적으로 소멸시효의 주장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하여 위에서 본 92다35899 판결 등이 제3채무자의 시효원용을 불허하는 것과 달리 일반채권자가 그 채무자를 대위하여 다른 채권자를 상대로 소멸시효원용권을 행사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위 판결의 사안은 부동산에 대한 경매절차의 후순위 채권자인 원고들이 가등기담보권자인 피고들을 상대로 제기한 배당이의의 소에서 부동산소유자를 대위하여 피고들의 채권이 시효로 소멸하였다고 주장한 사건이다. 절대적 소멸설의 논리에 따른다면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피고들의 채권이 당연히 소멸하여 원고들이 아무런 제한 없이 이를 주장할 수 있어야 함에도, 대법원이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자를 ‘채무 소멸로 직접적인 이익을 받는 자’로 한정하였고, 나아가 그마저도 원고들이 독자적으로 소멸시효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를 대위하여서만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상대적 소멸설에 근접한 논리를 전개한 것이라고 평가된다.
마. 검토
1) 민법 시행 전 의용민법은 제167조에서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않을 때는 소멸한다’고 규정하면서 제145조에서 ‘시효는 당사자가 원용하지 않으면, 법원이 그에 의하여 재판할 수 없다’고 규정하였고, 이때에는 위 두 규정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학설의 대립이 있었다. 그런데 1958. 2. 22. 제정되어 1960. 1. 1. 시행된 민법은 제162조 제1항에서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고 규정하였을 뿐, 의용민법 제145조와 같은 시효 원용에 관한 조항은 두지 아니하였다. 이처럼 민법 제정 과정에서 의용민법의 시효 원용 조항이 삭제된 경위에 관하여 민법안심의록에서는 “현행법 제145조 ‘시효의 원용’에 관한 규정을 삭제한 문제 …(중략)… 종래 시효의 원용에 관하여 각종의 학설이 발생하였는바 초안은 이를 정리하여 원용에 관한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시효에 관하여는 금후 절대적 소멸설이 확정되고 따라서 원용은 하나의 항변권으로 화하게 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위와 같은 민법의 제정 과정 등을 통하여 확인되는 입법자의 의사는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 것임이 분명해 보인다.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학설에서는 민법이 시효 원용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은 것이 절대적 소멸설을 따르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2) 그러나 입법자의 의사가 위와 같다고 하더라도, 다음과 같은 이유에 비추어 민법이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고 있다거나, 상대적 소멸설을 배제하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다소 곤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법률해석의 기준(Canone)으로는 ① 법률규정의 문언적 의미를 밝혀 개별적인 사안을 포섭시키는 문리 해석, ② 개별 법규의 문언에 제한되지 아니하고 관련된 여러 법규와의 관계 속에서 해당 법규가 속한 일정한 법체계 전체의 논리적 맥락을 고려하는 논리적․체계적 해석, ③ 입법자가 해당 법률을 제정할 당시 의도하였던 계획에 맞게 법률규정의 의미를 파악하는 주관적․역사적 해석, ④ 과거에 실존했던 인간의 목적이 아니라 법질서에서 객관적으로 요구되는 이성적인 목적에 따라 법규의 의미를 찾는 객관적․목적론적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또한 법률해석의 목표에 관하여 주관주의 해석이론과 객관주의 해석이론이 대립하는데, 전자가 입법자의 의사와 법의 제정을 통한 법적 안정성 추구를 중시한다면, 후자는 법관의 법해석을 통한 구체적 타당성 추구를 중시한다. 오늘날에는 위와 같은 각각의 법률해석 기준이나 목표 중 어느 하나만을 택하기보다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원칙적으로 주관적 해석으로 입법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목표이기는 하나, 입법자의 의도에 오류가 있거나 상황의 변화가 있는 경우 가능한 문언의 범위 내에서 객관적 해석을 할 수 있으며, 나아가 입법자의 의사의 확인은 입법자료 등을 통해 명시적으로 이를 발견하는 방법도 있지만 법률의 문언과 체계 등에 기초한 해석의 영역에 맡겨져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살피건대, 민법에서 의용민법 제145조와 같은 시효 원용에 관한 규정은 삭제되었지만, 그렇다고 민법이 시효기간의 경과로 권리가 절대적으로 소멸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만약 민법이 국세기본법 제26조 제3호와 같이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채권이 소멸한다는 명문 규정을 총칙편에 두고 있었다면,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고 있음에 의문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법 총칙편에는 그러한 규정이 없다. 다만 민법은 제369조에서 ‘저당권으로 담보한 채권이 시효의 완성 기타 사유로 인하여 소멸한 때에는 저당권도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제766조 제1항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청구권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간 이를 행사하지 아니하면 시효로 인하여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부칙(제471호, 1958. 2. 22.) 제8조 제1항에서 ‘본법 시행 당시에 구법의 규정에 의한 시효기간을 경과한 권리는 본법의 규정에 의하여 취득 또는 소멸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법률규정들은 민법이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에 서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민법 제369조와 제766조 제1항은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한다‘거나 ’시효로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어서, 그 문언상 시효원용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해석을 배제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위 부칙 제8조 제1항은 ’시효기간이 경과한 권리는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절대적 소멸설을 따랐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위 부칙 규정은 기본적으로 민법 시행 전에 의용민법에 따라 형성된 권리관계를 규율하는 경과규정이므로, 위 부칙 규정 하나만 가지고 민법의 태도가 절대적 소멸설로 기울어 다른 해석의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까 한다. 게다가 앞서 본 바와 같이 오늘날의 법률해석방법론은 실재하는 입법자의 의사는 물론이고 그 규정의 문언과 전체적인 체계 및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입법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사정들에 비추어 보면, 비록 입법자가 절대적 소멸설을 따를 의도로 의용민법의 시효 원용 규정을 민법에서 삭제하였음이 확인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민법 총칙편에서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이상, 소멸시효제도의 취지와 관련 규정의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상대적 소멸설을 취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남기고 있다고 판단된다.
3) 이처럼 민법이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절대적 소멸설로도, 상대적 소멸설로도 해석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고 전제한다면, 두 견해 중 무엇을 채택할 것인지는 ① 어느 견해가 논리적인 일관성이나 간결성의 측면에서 우위에 있는지, ② 어느 견해가 상위규범인 헌법과 보편적인 정의관념에 보다 부합하는지에 따라 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위 두 가지의 기준을 가지고 두 학설을 검토한 결과,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은 이유로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절대적 소멸설보다는 상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가) 흔히들 절대적 소멸설이 소멸시효 완성으로 권리가 소멸한다고 하면서도 변론주의에 따라 이를 소송상 항변으로 주장하지 않으면 법원이 고려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여 현실적으로 상대적 소멸설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한다. 물론 일반적인 이행의 소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에도 채무자가 이를 항변하지 아니하면 법원이 변론주의에 따라 이를 소송상 고려할 수 없어서이든, 실체법상 채권이 소멸하지 않아서이든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되는 결과는 동일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 예컨대 제1, 2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이미 확정된 승소판결을 받은 채권자가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한 때에 소멸시효 중단을 위해 동일한 소를 제기하거나, 그 기간이 경과한 후에 소멸시효 중단을 위해 동일한 소를 제기한 경우를 살펴보면, 두 견해의 논리구성의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이 경우는 확정판결이 있음에도 또다시 동일한 소를 제기한 경우이므로 기판력에 저촉되지 않는지부터가 문제되는데,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대법원이 취하는 모순금지설이 타당함은 앞에서 본 바와 같고, 모순금지설에 따를 때 원고에게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되는 한 후소는 적법하다. 그러나 민사소송법에서 권리보호이익이 무엇인지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아서 이 경우 원고에게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되는지 여부는 해석에 맡겨져 있는데, 이는 결국 소멸시효제도의 본질과 소멸시효완성의 효과 등에 관한 해석에 따라 판단될 수밖에 없다.
절대적 소멸설은 판결확정 후 10년이 경과하면 권리가 소멸한다고 보는 까닭에,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간명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견해가 대립하게 된다. 먼저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한 때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에 관하여는 일단 시효가 경과하지 않아 채권이 존속하니 재소를 허용하여야 한다는 입장과, 이를 허용하면 소멸시효기간 경과로 권리를 소멸시키는 시효제도의 취지에 어긋나게 사실상 채권의 영속성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다는 견해의 대립이 있을 수 있다. 다음으로 소멸시효기간이 이미 경과한 후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에 관하여 절대적 소멸설의 원칙적인 입장에서는 전소 판결확정일로부터 10년이 경과하여 이미 채권이 소멸하였기 때문에 재소의 이익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절대적 소멸설에 변론주의를 접목할 경우, 소제기 단계에서는 아직 피고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할지 여부를 알 수 없고, 피고가 끝까지 항변을 하지 않아 법원이 이를 고려하지 못하여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원고에게 소의 이익이 인정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반면 이 경우에도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할 경우 사실상 채권의 영속성을 긍정하게 되어 소멸시효제도의 취지가 몰각된다는 이유로 여전히 권리보호의 이익을 부정하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특히 전소 판결확정일로부터 10년의 경과가 임박하기는 하였지만 아직 그 기간이 경과하지는 아니하여 절대적 소멸설에 따르더라도 채권이 존속함에 의문이 없는 시점에 시효중단의 재소가 제기된 경우에도 제1 대상판결에서 보듯이 시효완성으로 채권이 소멸한다는 전제에서 이를 허용할 것인지에 관하여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사이에 치열한 찬반논쟁이 벌어졌는데,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후에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에 대하여는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을 유지한다면 그 허용 여부에 관하여 더욱 논란이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이와 달리 상대적 소멸설에서는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였든 아니면 이미 경과하였든지 여부와 상관없이 채무자가 시효원용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실체법적으로 채권이 계속 존속한다고 보기 때문에, 위와 같은 견해 대립의 여지가 없다. 즉,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에서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한 시점에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할지에 관한 쟁점은 사실상 채권이 영원히 존속하는 결과를 인정할 것인지 여부인데, 상대적 소멸설에서는 채권이 소멸시효기간 경과와 무관하게 일단 존속하는 것이 원칙이고, 다만 채무자가 시효원용권이라는 형성권을 행사하여 채권을 소멸시키는 것일 뿐이므로, 채권의 영속성을 인정하는 것에 별다른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후 시효중단의 재소가 제기된 경우 절대적 소멸설에서는 이미 소멸한 권리의 재판상 청구를 거듭해서 허용할지가 변론주의와 맞물려 논쟁의 대상이 되지만, 상대적 소멸설에서는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였어도 채무자의 시효원용권 행사가 없는 한도에서는 권리의 소멸 자체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처럼 일반적인 경우에는 절대적 소멸설이 변론주의와 결합하여 채무자의 항변 여부에 따라 실체관계와 재판결과가 달라지는 현실을 설명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상대적 소멸설과 실질적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이지만, 시효중단의 재소와 같은 예외적인 소송형태에 마주하면,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논점을 간결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이를 허용할 것인지 여부와 만약 허용할 경우 소멸시효 완성으로 권리가 소멸한다는 절대적 소멸설의 기본 원칙과 충돌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에 관하여 또다시 견해가 대립하게 된다. 그 결과 절대적 소멸설에서는 시효중단의 재소처럼 소멸시효 완성으로 권리가 소멸한다는 원칙에 어긋나지만 현실적인 필요성을 완전히 부인하기 어려운 사안에 관하여 간결하고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 상대적 소멸설은 시효의 원용권이라는 일종의 완충지대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위와 같은 경우를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논리적인 모순 없이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에 더하여 절대적 소멸설의 또 다른 이론적 난점으로 시효이익 포기를 논리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에서 보면 실체법적으로 이미 권리가 소멸해버렸으므로, 권리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법률행위가 필요하고, 이는 종전에 권리를 발생시킨 원인이 되었던 계약과 같이 쌍방의 의사가 합치하는 형태를 갖추어야 할 것인데,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학설들조차 시효이익의 포기가 일방적 의사표시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채무자가 시효이익을 포기하면 그 효과는 소멸시효 완성 전으로 소급하는데, 절대적 소멸설에 따를 경우 시효기간의 경과로 이미 소멸한 권리가 채무자의 의사표시로 처음부터 소멸하지 않았던 것이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러한 까닭에 절대적 소멸설에서는 시효이익의 포기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을 시인하거나, 법률의 규정이 특별히 효력을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이 절대적 소멸설이 ① 시효중단의 재소와 같이 소멸시효기간의 경과로 권리가 소멸한다는 원칙에 어긋나지만 현실적인 필요성을 완전히 부인하기 어려운 사안에 관하여 간결하고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은 점, ② 시효이익의 포기를 논리적으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상대적 소멸설이 절대적 소멸설보다 이론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 대법원은 법률이 헌법규범과 조화되도록 해석하는 것은 법령의 해석․적용상의 대원칙이고, 어떤 법률조항의 개념이 다의적이고 그 어의의 테두리 안에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경우에는 가급적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 즉 합헌적 법률해석을 택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헌법재판소도 어떤 법률에 대한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헌법에 합치되는 해석, 즉 합헌해석을 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아울러 헌법재판소는 재산권을 제한하는 입법이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유래하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되어서는 아니되고, 이때 과잉금지원칙은 ① 목적의 정당성, ② 방법의 적정성, ③ 피해의 최소성, ④ 법익의 균형성을 그 내용으로 하며, 그 중 어느 하나에라도 저촉되면 헌법에 위반된다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
소멸시효제도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당한 권리자를 희생시켜서 의무자를 보호하는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재산권에 대한 제한을 수반한다. 물론 헌법재판소는 앞에서 살펴본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등에 비추어 소멸시효에 관한 민법의 규정 등이 입법형성권의 한계를 준수하여 원칙적으로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소멸시효제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 것과 별도로, 소멸시효에 관한 민법 규정을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적용할 때에는 헌법규범과 조화되도록 해석해야 하고, 특히 법률에서 어떠한 사항을 명확하게 규율하지 아니하여 여러 갈래의 해석이 가능한 경우 가급적 헌법에 합치되는 방향으로 해석론을 전개하여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민법이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해석의 영역에 맡겨진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할 것이다.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가 입증곤란 구제,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 의무자의 정당한 신뢰 보호에 있음을 앞에서 본 바와 같고, 이는 입법자가 소멸시효제도를 통하여 달성하려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입법목적은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의무자에게 권리를 소멸시킬 수 있는 형성권을 부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고, 이를 위하여 굳이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면 의무자의 의사표시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곧바로 권리를 소멸시키는 수준에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는 상대적 소멸설이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유래하는 과잉금지원칙에 보다 부합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나아가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법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권리를 가진 자를 보호하고 의무를 위반한 자를 제재하는 것이 민법을 비롯한 실정법의 근저에 담긴 기본 정신임은 물론이고 보편적인 정의관념에도 부합하는 것임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를 긍정하여 위와 같이 권리자를 보호하는 민법의 원칙에 일정한 예외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예외의 인정범위와 방식 등이 다투어지는 경우에는 다시 원칙으로 돌아와 가급적 정당한 권리를 존속시키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정한 기간의 경과만으로 권리가 곧바로 소멸한다고 보는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보다는, 의무자의 의사표시 여하에 따라 권리가 존속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상대적 소멸설이 보편적인 정의관념에 좀 더 부합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는 절대적 소멸설보다는 상대적 소멸설이 ①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유래하는 과잉금지원칙과 ②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보편적인 정의관념에 보다 부합하는 해석론이라고 할 수 있다.
Ⅴ. 대상판결에 대한 학설의 평가
1. 제1 대상판결에 대한 학설의 평가
가. 제1 대상판결에 찬동하는 견해
1) 민법이 이미 소멸시효기간과 기산점의 설정, 시효중단사유와 시효정지사유의 한정적 열거, 시효이익의 사전포기 금지, 시효의 배제․연장․가중 금지 등을 통해 채무자를 충분히 배려하면서 채권자와의 이익 균형을 설계해놓았고, 채권자가 그에 따라 재판상 청구를 하였는데도, 단지 그 이전에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이를 불허하여 채권을 소멸시키는 것은 법률상 근거 없이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제1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에 찬동하는 견해가 있다.
아울러 이 견해는, 채무자가 임의이행을 하지 않는 경우에 채권자가 재판상 청구 등 시효중단 조치를 하여 권리를 존속시킬 이익은 승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따라 동일한 판결을 선고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소의 제기를 거듭 허용할 권리보호이익에 해당하고, 이러한 권리보호이익의 존재 여부는 예컨대 부제소합의가 사후에 취소된 경우나, 장래이행의 소에서 채무자의 태도 등에 따라 미리 청구할 필요가 달리 판단되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이나 상황 변화에 따라 변동할 수 있는 것이며, 제1 대상판결 중 반대의견의 설시처럼 그것이 반드시 논리적으로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2) 한편 또 다른 견해는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모순금지설을 취하는 한 후소 법원이 전소 확정판결과 동일한 판결을 선고하면 되는 것이고, 후소의 제기 자체를 금지할 근거는 없으므로,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자가 동일한 신소를 제기한 경우 기판력에 저촉된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 견해는, 그 경우 단지 무익한 절차를 반복하여 동일한 판결을 두 번 받게 할 이유가 없어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후소가 부적법한 것일 뿐이고, 이와 달리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하여 채권자가 재판상 청구 외에는 권리를 보전할 방법이 없어 신소를 제기할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는 경우에는 권리보호이익을 부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후소가 적법하다고 하면서 제1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에 찬동하고 있다.
계속하여 이 견해는, 채권이 물권과 비교하여 한시성을 그 기본적 성질로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뿐더러, 소멸시효 중단을 위해 후소를 제기한 채권자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것이므로,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에 비추어 보더라도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나. 제1 대상판결에 비판적인 견해
1) 민법이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를 10년으로 규정한 것은 재판상 청구가 그 자체로 종국적인 권리행사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기판력 때문에 이를 여러 차례 반복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며, 나아가 항구적인 소유권, 법률에 존속기간이 정해져 있는 용익물권, 피담보채권과 독립하여 소멸하지 않는 담보물권과 달리 채권은 한시성을 그 본질적 특성으로 하기 때문에 무의미한 권리행사의 반복을 허용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한 제1 대상판결의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견해가 있다.
나아가 이 견해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와 채권의 한시성에 비추어 단순히 소멸시효기간 경과의 임박성만으로 확정된 승소판결의 기판력에도 불구하고 후소의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이 견해도 소멸시효기간 경과의 임박성에 더하여, 채권자가 최초 재판상 청구를 한 후 10년 동안 나름대로 권리실현을 위해 노력하였음에도 현재 별다른 소멸시효 중단사유가 없고, 용이한 집행방법도 없다는 등의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권리보호이익을 긍정할 수 있다고 본다.
2) 한편 또 다른 견해는, 판결이 확정된 채권이 최초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을 넘어 20년, 30년이 경과하도록 변제되지 않아 시효중단을 위한 소송사건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그 결과 동일한 소송물에 대하여 다수의 유효한 확정판결들이 존재하여 그 상호간의 효력이 어떠한지에 관하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 견해는, 이러한 상황에서 제1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이 어차피 만족되지 않을 채권을 영구히 존속시키는 것이 과연 민법상 소멸시효제도의 취지에 맞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기존 대법원 판례를 재검토할 필요성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다며 반대의견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2. 제2 대상판결에 대한 학설의 평가
가. 제2 대상판결에 찬동하는 견해
승소판결이 확정되고 10년이 경과하여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하더라도 채무자의 항변 여하에 따라 원고가 다시 승소판결을 받아 소멸시효를 연장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시효중단의 재소를 제기할 소의 이익이 인정된다는 이유로 제2 대상판결에 찬동하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는, 판례에 따르면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당사자의 원용이 없어도 그 사실 자체로 채권이 소멸하는 것이지만, 변론주의 원칙상 채무자가 시효의 이익을 받겠다는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지 않는 이상 그 의사에 반하여 재판할 수 없고, 나아가 시효이익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어 소멸시효가 완성된 사실은 당사자가 이를 주장하는 경우에만 고려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소멸시효기간이 이미 경과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시효중단의 재소가 부적법하다고 볼 것은 아니라고 한다.
나. 제2 대상판결에 비판적인 견해
제1 대상판결은 승소 확정판결이 미치는 후소의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하는 요건 중 하나로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였을 것’을 제시하였고, 이는 원칙적으로 기판력의 작용으로 후소의 제기를 허용할 수 없으나 예외적으로 그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이를 인정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하는 견해가 있다. 그러면서 이 견해는, 제2 대상판결이 앞서 제1 대상판결에서 설시하였던 ‘소멸시효 완성의 임박성’이라는 요건을 반대로 뒤집어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하지 않아 재소를 위한 소의 이익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재소를 허용한다고 판시한 것은, 제1 대상판결을 비롯한 기존의 대법원 판례가 설시해온 예외적인 재소의 허용요건에 관한 법리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원칙과 예외를 뒤바꾸어 소의 이익의 인정범위를 지나치게 넓힌 잘못이 있다고 비판한다.
Ⅵ. 대상판결에 대한 검토
1. 제1 대상판결에 관하여
가. 논의의 방향과 순서
제1 대상판결은 원고가 금전채권의 이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승소판결을 받아 확정되었고, 그 후 위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의 경과가 임박하자 다시 피고를 상대로 시효중단을 위하여 동일한 소를 제기한 사안이다. 이 사건은 확정판결이 존재하는 사안이므로 우선 후소가 기판력에 반하여 부적법한 것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이 경우 기판력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할지 여부가 결정되므로, 그에 관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사안에서 권리보호의 이익이 인정되는지 여부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와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실체법적 논의 결과에 따라 결정되므로, 그에 관한 검토가 필요하다. 위와 같은 순서로 논의를 진행하여 사안의 해결에 접근해보기로 한다.
나. 확정판결의 기판력에도 불구하고 소멸시효완성이 임박한 시점에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가 적법한지 여부
1) 문제의 소재
기판력의 본질에 관한 학설 중 반복금지설은 전소와 동일한 재판 자체를 금지하는 결과 전소 확정판결의 결론과 상관없이 후소를 각하하여야 한다는 입장이고, 모순금지설은 법원이 전소 판결과 모순된 판단을 하는 것을 금지할 뿐이므로 전소 판결이 원고 승소이면 후소도 그와 마찬가지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하여야 하나, 이미 전소 확정판결이 존재하므로 권리보호이익이 없어 후소를 각하하여야 하고, 전소 판결이 원고 패소이면 후소도 마찬가지로 원고 청구 기각 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고 한다. 제1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전소 확정판결이 원고 승소인 경우 반복금지설과 모순금지설 모두 후소를 부적법한 것으로 보아 원칙적으로 이를 각하해야 한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일견 두 학설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결론을 이끌어내는 근거에 관하여는 두 학설이 판이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데, 그와 같은 논리구성의 차이는 제1 대상판결 사안과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 후소의 적법성을 인정할 것인지에 관하여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는 원인이 된다.
2) 반복금지설에 따를 경우 소멸시효완성이 임박한 시점에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가 적법한지 여부
반복금지설에서는 앞에서 본 것처럼 기판력을 전소와 동일한 소송 자체를 금지하는 효력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일단 전소와 소송물이 동일하여 후소에 기판력이 미치는 것이 분명한 이상, 단순히 실체법적 판단에서 또는 현실적 고려에서 후소를 허용할 필요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유만으로 예외적으로 후소의 적법성을 인정할 수 있는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반복금지설을 취하는 입장에서는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채권자가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한 때에 소멸시효 중단을 위하여 후소를 제기한 경우 기판력에 저촉되어 부적법하다고 보게 될 것이다. 만약 이와 달리 반복금지설을 취하는 입장에서 후소가 적법하다고 본다면, 이는 현실적인 필요성을 이유로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논리적 일관성을 포기하고 기판력의 예외를 인정해버리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3) 모순금지설에 따를 경우 소멸시효완성이 임박한 시점에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가 적법한지 여부
모순금지설에서는 기판력을 전소와 동일한 재판을 금지하는 효력으로까지 보지 않고, 단지 후소 법원이 전소 판결과 모순된 판단을 하지 못하게 구속하는 효력에 그친다고 보아 기판력이 작용하여도 후소의 제기 자체가 원천적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전제한 다음, 다만 이 경우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원고가 동일한 소를 제기한다면 법원은 다시 동일한 판결을 할 수밖에 없어 무익한 절차를 반복할 소의 이익이 인정되지 아니하여 후소가 부적법하게 될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한 까닭에 모순금지설에서는 확정된 승소판결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원고가 다시 동일한 소를 제기할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후소 법원이 전소 판결의 기판력에 따라 그에 모순되지 않는 판결을 선고하는 조건으로 소의 이익을 긍정하여 후소의 적법성을 인정할 수 있다. 따라서 모순금지설에서는, 제1 대상판결의 사안과 같이 확정된 승소판결을 받은 원고가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한 시점에 소멸시효의 중단을 위하여 동일한 후소를 제기한 경우, 굳이 무리해서 이 경우를 확정판결의 기판력이 미치지 않는 특별한 케이스로 취급하지 않더라도, 권리보호이익을 매개로 후소를 적법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다.
다만 위와 같은 설명은 어디까지나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모순금지설의 입장을 취할 경우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적법하다고 인정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이지, 모순금지설을 취한다고 하여 바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의 적법성을 긍정하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순금지설의 입장에서 확정된 승소판결에도 불구하고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적법한 것으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그러한 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의 이익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의 문제로 귀결된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민사소송법은 소의 이익 또는 권리보호이익의 인정요건에 관하여 명문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므로, 권리보호이익의 존재 여부는 해석에 따라 판가름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권리보호의 이익은 단순히 원고가 소를 제기할 주관적인 이유나 사실상의 필요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법률적인 평가를 거치지 않고 무작정 긍정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이와 달리 주관적인 이유나 사실상의 필요성만으로 권리보호이익을 긍정한다면 권리보호이익의 부존재를 이유로 소를 각하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원고가 비용을 부담하면서 소를 제기한 때에는 모두 나름의 필요성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과연 언제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할 것인가로 수렴하는데, 구체적으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의 경우에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와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 등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관한 실체법적 검토를 통해 권리보호이익의 인정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4) 검토
대법원은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모순금지설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고, 사견으로도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동일한 소송의 금지라는 도그마 때문에 이론적인 경직성이 드러나는 반복금지설보다는 구체적 타당성을 위한 탄력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논리적 일관성도 잃지 않는 모순금지설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제1 대상판결의 사안과 같이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가 제기된 경우 모순금지설의 입장을 취하여 전소 판결의 기판력에도 불구하고 원고가 후소를 제기할 특별한 필요성이 인정된다면 소의 이익을 긍정하여 후소의 적법성을 인정할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다만 위와 같은 판단이 모순금지설을 취하는 경우 곧바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의 적법성을 긍정하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뜻은 아니며, 후소의 제기를 허용할 권리보호의 이익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결국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및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 등에 관한 실체법적 검토 결과에 따라 판가름나게 된다. 이하에서는 항을 바꾸어 그에 관하여 논의를 이어나가기로 한다.
다.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비추어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때 시효중단 재소가 허용되는지 여부
1) 문제의 소재
제1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시효중단 재소를 허용할지 여부는 소멸시효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소멸시효는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 권리를 소멸시키거나 소멸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시점에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할 경우 사실상 권리가 영원히 소멸하지 않도록 할 수 있어 소멸시효의 본질과 충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멸시효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는 ①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구체적으로 권리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즉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문제와, ② 무엇 때문에 그러한 효과가 생긴다고 보는 것인지, 즉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를 검토하여 파악할 수 있다. 결국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비추어 제1 대상판결 사안에서 시효중단 재소를 허용할지 여부의 문제는,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각 학설에 따른 권리관계를 살펴보고, 이를 전제로 각각의 경우에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를 강조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방법으로 그 해답에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 상대적 소멸설의 관점에서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경우 시효중단의 재소가 허용되는지 여부
상대적 소멸설은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권리가 소멸하지 않고 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에게 소멸시효를 원용할 권리가 발생하는 데 그치며, 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가 이를 원용할 때 비로소 권리가 소급하여 소멸하는 효과가 발생하므로, 시효원용권은 형성권에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상대적 소멸설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어도 권리가 당장 소멸하지 않고 당사자가 시효원용권을 행사할 때까지는 존속한다고 보기 때문에, 제1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비록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아직 그 기간이 경과하지 않은 시점에 채권의 소멸시효 중단을 위한 재소를 제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허용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렵다.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였더라도 시효중단의 재소를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주된 근거는, 제1 대상판결의 반대의견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를 허용할 경우 10년의 소멸시효기간 경과로 소멸하게 될 운명인 채권을 매 10년마다 시효중단의 재소를 제기하는 방법으로 사실상 영원히 존속시킬 수 있게 되는데, 이는 채권의 한시성과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반하여 부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 소멸설의 관점에서 보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어도 당사자의 원용이 없는 한 일단 실체법적으로 채권이 존속하는 것이 원칙이고, 설령 당사자의 원용이 없어 채권이 영원히 존속하는 결과가 된다 한들 이를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상대적 소멸설에서는 채권이 한시성을 그 본질적 속성으로 한다거나, 채권을 사실상 영원히 존속시키는 것이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어긋나 부당하다는 논리가 애당초 성립할 여지가 없다.
한편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로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 의무자의 정당한 신뢰 보호를 들 수 있음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은데,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의무자 보호’라고 할 수 있다.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가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에 비추어 허용될 것인지의 문제는,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거나 그 경과가 임박하여 의무자를 보호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이를 양보하여 권리자 보호를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런데 상대적 소멸설에서는 의무자 보호라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의 실현 여부를 의무자의 선택에 맡긴다. 입증곤란 구제도,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도, 정당한 신뢰의 보호도 모두 의무자가 이를 원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제1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지도 아니한 시점에서는 그러한 의무자의 선택권이 아직 발생조차 하지 아니하였다. 하지만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면 의무자에게 선택권이 발생하고, 권리자로서는 의무자의 선택 여하에 따라 실체법상 자신의 권리가 소멸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하게 되므로, 당장 채권의 만족을 얻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일단 소멸시효라도 중단시켜 그러한 위험을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게 된다. 이처럼 상대적 소멸설의 관점에서는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했다고 하더라도, 그 채권이 ‘곧 소멸할 운명’은 아니고, 앞으로도 시효원용권이 행사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실체법상 계속 존재할 채권이기 때문에, 채권이 소멸하거나 곧 소멸할 상황이 되어야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를 들어 그 이전에 채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시효중단의 재소를 제기하는 것을 금지할 명분이 없다.
따라서 상대적 소멸설의 관점에서는 제1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게 된다.
3) 절대적 소멸설의 관점에서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경우 시효중단의 재소가 허용되는지 여부
가) 절대적 소멸설은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사실 자체만으로 실체법적으로 권리가 소멸하고, 다만 변론주의 원칙에 따라 채무자가 소송에서 시효완성 항변을 하지 않으면 법원이 직권으로 이를 고려할 수 없을 뿐이라는 입장이다. 즉, 절대적 소멸설에서는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지 않아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의 이행을 명하는 판결이 선고되는 경우, 이를 실체적인 권리관계에 어긋나는 판결로 보면서도, 소송법상 변론주의 원칙을 원용하여 판결의 내용과 실체적 권리관계가 불일치하는 상황을 부득이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처럼 절대적 소멸설에서 소송법상 변론주의 원칙을 끌어와 실제 소송에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에도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되는 현실을 설명하는 것은, 실체법적으로는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권리가 절대적으로 소멸한다는 도그마를 고수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도그마로부터 채권은 언젠가 소멸할 운명이라는 채권의 한시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고, 나아가 시효중단 소송의 반복을 통해 채권을 영원히 존속시키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부당하다는 관념이 출발한 것이 아닌가 한다.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을 취하면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면 곧바로 권리가 소멸한다는 도그마를 전제하게 되지만, 현실적으로 민법에서 시효중단 사유로서의 재판상 청구의 횟수를 1회로 제한하는 규정이 없어 문리해석상으로는 시효중단의 재소를 막을 방법이 없다. 그 결과 앞서 본 절대적 소멸설의 도그마에서 유래하는 채권의 한시성이라는 관념과, 시효중단 재소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을 적어도 문언상으로는 금하지 않는 실정법적 현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다. 그 충돌의 양상은 제1 대상판결의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및 그 보충의견들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논쟁에서 직접 목격할 수 있다. 제1 대상판결에서 벌어진 논쟁을 절대적 소멸설 내부에서의 견해대립으로 파악하는 이유는, 시효중단의 재소를 불허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대의견은 물론이고, 이를 허용하여야 한다는 다수의견과 그 보충의견들조차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권리가 소멸한다는 전제에 서 있다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즉, 소멸시효가 완성되어도 권리가 곧바로 소멸하지 않는다는 상대적 소멸설의 견지에서는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는 논리를 구성하면서 굳이 재판상 청구와 다른 시효중단사유를 비교하거나, 회생․파산제도 등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이익균형에 관한 다른 제도의 존재를 부각시킬 필요가 없다. 다수의견과 그 보충의견들이 시효원용권의 개념을 언급하지 않는 대신 위와 같은 여러 논거들을 제시한 것은 기본적으로 절대적 소멸설의 견지에 서 있다는 방증이다.
이와 관련하여, 제1 대상판결에서 벌어진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및 그 보충의견들 사이의 논쟁의 경과를 한 번 더 훑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먼저 다수의견이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유지하는 입장에서 민법이 압류, 가압류, 승인 등 다른 시효중단사유의 횟수를 제한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재판상 청구도 마찬가지로 해석해야 한다는 이유를 제시하여 운을 띄웠다. 여기에 반대의견은 채권의 한시성이라는 관념을 제시하면서 민법의 취지가 재판상 청구의 무한 반복을 통한 채권의 영원한 존속을 용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제한 다음, ‘시효완성 임박 시점’ 개념의 불명확성, 권리보호이익이 유독 특정한 시점에 부활한다는 논리의 비합리성, 압류․가압류․가처분도 중복신청이 불허된다는 법리, 채권추심기관의 난립과 채무자의 부담 완화를 위한 사회적 필요성 등 여러 논거를 들어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해선 안 된다며 다수의견을 반박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들이 민법상 재판상 청구 횟수 제한 규정의 부존재, 권리자를 의무불이행자보다 더 보호하여야 한다는 보편적인 정의관념, 서로 다른 여러 재산에는 중복하여 압류나 가압류가 가능하다는 법리, 악의적 강제집행면탈로부터 채권자를 보호할 필요성, 독일․프랑스․유럽계약법원칙 등 외국의 입법례 등을 논거로 제시하여 반대의견을 재반박하고 다수의견을 옹호하였다. 이에 반대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이 유럽계약법원칙 제3부에서 재판상 청구를 소멸시효 정지사유로 규정한 점 등을 논거로 들어 소멸시효제도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면서 논쟁의 끝을 맺었다.
나) 이 자리에서는 제1 대상판결의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및 그 보충의견들이 제시한 각각의 논거들의 당부를 하나하나 검토하는 대신, 절대적 소멸설의 관점을 전제로 하는 경우 제1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시효중단의 재소가 허용되는 것인지에 관하여,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등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사견을 밝히는 것으로 갈음하고자 한다.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는 입증곤란 구제,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 의무자의 정당한 신뢰 보호에 있고, 이는 결국 ‘의무자 보호’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된다.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을 취하는 이상, 채권은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면 그 자체로 소멸하게 되므로, 본질적으로 한시성을 가진다는 관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였을지언정 아직 그 기간이 경과하지 아니하였다면, 절대적 소멸설에 따르더라도 채권이 머지않아 소멸할 상태에 불과할 뿐이지 아직 소멸한 것은 아니다. 채권이 한시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한다거나, 채권이 사실상 영원히 존속하게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은 그 논리적 근거가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와 결부되어 있다. 민법에 명문 규정도 없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채권의 한시성이라는 관념을 인정하고 재판상 청구의 횟수를 1회로 제한하여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마주하면, 결국 그 정당화 근거로 의무자 보호라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를 소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래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는 일정한 기간의 경과를 전제로 권리의 소멸을 정당화하는 논리이니만큼, 비록 그 기간의 경과가 임박했다고 하더라도 아직 그 기간이 경과하지 않은 시점에서는 그 정당화 논리의 설득력도 자연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소멸시효제도의 세 가지 존재이유 중 ① 먼저 입증곤란의 구제에 관하여 보면, 제1 대상판결의 사안은 이미 전소 확정판결을 통하여 의무의 존재와 범위가 명확히 밝혀진 상태이므로, 입증곤란 구제라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가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② 다음으로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에 관하여 보면, 시효중단의 재소는 향후 강제집행을 위하여 시간을 벌겠다는 것으로 채권자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지난 10년 동안 강제집행을 통해 채권의 만족을 얻지 못한 것이 꼭 채권자의 게으름 탓이라고 일률적으로 단정하기도 어려우므로, 채권자가 민법의 규정에 따라 아직 소멸하지 아니한 채권의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는 조치를 취할 권능을 박탈할 명분이 된다고 할 수 없다. ③ 나아가 의무자의 정당한 신뢰 보호에 관하여 살펴보면, 제1 대상판결의 사안은 이미 전소 확정판결을 통하여 의무의 존재와 범위가 명확하게 밝혀진 상태일뿐더러, 비록 권리불행사의 상태가 상당한 기간 동안 지속되기는 하였으나 아직까지 그 기간이 민법이 규정한 판결이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을 넘어서지는 않았으므로, 의무자가 더 이상의 권리행사가 없으리라고 신뢰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법에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우므로, 시효중단의 재소를 불허할 명분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제1 대상판결의 사안은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로 이야기되는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를 근거로 민법에서 명문으로 금지하지도 않는 시효중단의 재소를 불허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절대적 소멸설에 의하면 소멸시효 완성에 따른 권리의 절대적 소멸이라는 도그마로부터 채권의 한시성이라는 관념이 도출되는데, 다른 한편으로 실정법에서 재판상 청구의 횟수를 명문으로 제한하지는 않고 있으므로, 관념과 현실이 서로 충돌하여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할지 여부가 다투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였을지언정 아직 그 기간이 경과하지는 않아 채권이 존속하는 제1 대상판결 사안에서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세 가지가 모두 별다른 의미를 가지지 못하여 채권의 한시성 관념을 정당화할 근거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므로, 이를 내세워 민법이 명시적으로 금지하지도 아니한 시효중단의 재소를 불허하기는 곤란하다. 따라서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한 시점에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는 이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4) 검토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상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경우 처음부터 채권의 한시성이라는 관념을 상정할 수 없어 제1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별다른 논란 없이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게 된다. 필자가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를 설명하는 두 학설 중 상대적 소멸설이 이론적으로 우위에 있고 헌법규범과 보편적인 정의관념에 부합하여 보다 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은 이미 밝혔으므로, 사견은 기본적으로 상대적 소멸설에 따라 제1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시효중단 재소를 허용하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와 달리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경우에는 시효 완성에 따른 권리의 소멸이라는 도그마 때문에 채권의 한시성이라는 관념이 도출되고, 그 결과 절대적 소멸설 내부에서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할지에 관하여 제1 대상판결에서 보듯이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사견으로는 절대적 소멸설을 취할 경우 채권의 한시성 관념을 부인하기는 어려우나, 제1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아직까지 권리가 소멸하지 아니하고 존속하는 까닭에 채권의 한시성 관념의 근저에 위치한 의무자 보호라는 목적을 추구할 당위성이 부족하므로,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어떠한 견해를 취하더라도 제1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라. 소결
위와 같이 기판력과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통하여 제1 대상판결의 당부를 검토해보았다. 그 결과 기판력의 본질에 관한 모순금지설에 따라 채권자가 승소 확정판결을 받았음에도 시효중단의 재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었고, 권리보호이익의 존재 여부에 관한 구체적 판단에 들어가서는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상대적 소멸설의 견지에서 실체법적으로 존속하는 채권의 보전을 위하여 제기된 시효중단 재소의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으며, 그리하여 제1 대상판결과 판단의 근거는 다르지만 같은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물론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비록 논란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실체법적으로 아직 채권이 소멸하지 않은 까닭에 시효중단의 재소를 금지할 뚜렷한 명분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동일하다.
2. 제2 대상판결에 관하여
가. 논의의 방향과 순서
제2 대상판결의 사실관계는 원고가 피고를 상대로 금전채권의 이행을 청구하는 소를 제기하여 강제조정결정과 승소판결을 받아 확정된 날로부터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인 10년이 경과한 후 소멸시효 중단을 위하여 동일한 소를 제기한 경우이다. 이 경우도 우선 후소가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반하여 부적법한 것이 아닌지를 기판력의 본질에 비추어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이 사안은 제1 대상판결과 다르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 10년이 이미 경과한 상태이기 때문에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각 학설에 따른 해결방법이 새로운 양상을 나타낼 것이므로, 이에 관하여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나. 확정판결의 기판력에도 불구하고 소멸시효기간 경과 후에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가 적법한지 여부
제2 대상판결의 사실관계는 시효중단의 재소가 소멸시효기간 경과 후에 제기되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확정된 승소판결을 받은 원고가 제기한 후소의 적법 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그 기본적인 구조가 제1 대상판결의 사안과 동일하다. 앞서 제1 대상판결에 관하여 검토한 바와 같이, 이 경우도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반복금지설을 취하는 경우 기판력의 예외를 인정할 논리적인 근거가 없어 후소가 부적법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반면에 모순금지설에 의할 경우 원고가 후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되는 특별한 사정이 존재한다면 후소 법원이 전소 확정판결과 모순되지 않는 판단을 한다는 전제에서 후소의 적법성을 인정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기판력의 본질에 관하여 모순금지설이 타당함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모순금지설에 따를 때 구체적으로 사안에서 시효중단의 재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의 이익이 인정되는지 여부는 아래에서 살펴보는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관한 실체법적 논의에서 판가름나게 된다.
다.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비추어 소멸시효기간 경과 후에 시효중단의 재소가 허용되는지 여부
1) 문제의 소재
제1 대상판결은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였을지언정 아직 그 기간이 경과하지 않은 시점에 시효중단의 재소가 제기된 사안이므로,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절대적 소멸설과 상대적 소멸설 중 어느 관점을 취하더라도 실체법적으로 채권이 아직 소멸하지 않고 존속하는 경우이다. 그럼에도 절대적 소멸설에서는 위 채권이 ‘곧 소멸할 운명인 채권’이라는 점에서, 채권의 한시성이라는 관념에 비추어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할지에 관하여 논쟁이 있었다. 그런데 제2 대상판결 사안은 소멸시효기간이 이미 경과해버린 후에 시효중단의 재소가 제기된 경우여서, 절대적 소멸설과 상대적 소멸설 사이에 실체법상 채권이 존속하는지 여부에서부터 견해가 갈린다. 아울러 절대적 소멸설 내부에서도 제2 대상판결에서 보듯이 채권이 이미 소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효중단 재소의 적법성을 긍정하는 견해와, 반대로 이를 부정하는 견해가 있을 수 있고, 이들 사이의 견해 대립은 제1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보다 서로간의 간극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2) 상대적 소멸설의 관점에서 소멸시효기간 경과 후에 시효중단의 재소가 허용되는지 여부
가) 상대적 소멸설에서는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더라도 당사자가 이를 원용하여 권리를 소멸시킬 수 있는 형성권이 발생할 뿐, 곧바로 권리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므로, 제2 대상판결의 사실관계에서 소 제기 시점을 기준으로 아직까지 채권이 소멸하지 않고 존속하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채권의 한시성이라든지 소멸시효 중단을 통해 채권을 영원히 존속시키는 것이 부당하다는 관념은 처음부터 자리할 여지가 없다. 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가 시효원용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채권이 계속 존속하는 것이 논리상 당연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시점부터는 채무자 등 시효의 이익을 받을 자가 시효원용권을 행사한다면 언제든지 자신의 권리가 소멸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채권자가 그와 같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비록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였더라도 혹여 채무자가 이를 알지 못하는 등의 사유로 시효원용권을 행사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일단 채무자를 상대로 다시 동일한 소를 제기해보는 것이다. 만약 후소에서 채무자가 변론종결시까지 시효원용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후소 법원은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따라 그와 동일한 내용으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후소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되면, 민법 제178조 제1항, 제2항에 따라 원고의 채권은 후소의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새로이 소멸시효가 진행하고, 그 소멸시효기간은 민법 제165조 제1항에 따라 10년이 된다. 이처럼 후소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되어 새로운 10년의 소멸시효가 진행되면, 그때부터는 채무자가 새삼스레 그 전에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던 사실을 들어 시효원용권을 행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위와 같이 후소 판결의 확정에 따라 채무자가 기왕의 시효원용권을 더 이상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엄밀히 말하여 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의 시적 범위에 따른 차단효 때문은 아니고, 그 이전에 실체법적으로 시효원용권이 소멸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채무자는 후소 판결이 확정되면 기판력으로 인하여 후소 변론종결일 이전의 사유인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은 민사소송법에 따라 소송에서 그와 같은 항변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에 불과하지, 실체법적으로 채무자의 시효원용권이 소멸하는 것과는 별개이다. 이는 착오 등을 이유로 취소권이 발생한 경우 소송에서 이를 행사하지 않아 패소판결이 확정되면 기판력에 따라 후소에서 동일한 취소권을 다시 주장할 수는 없으나, 실체법적으로 취소권은 추인 또는 법정추인이 있거나 민법 제146조에서 정한 기간의 경과한 때 비로소 소멸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이다. 제2 대상판결의 사안은 비록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였지만 채무자가 이를 원용하지 않는 사이에 채권자가 재판상 청구로 소멸시효를 중단시킨 경우이고, 그 재판상 청구가 받아들여져 민법 제178조에 따라 후소 판결의 확정일부터 새로운 소멸시효가 진행하게 되었다면, 이로써 그 이전에 한 차례 소멸시효가 완성된 것은 무효가 되어서 그에 관한 채무자의 시효원용권은 실체법적으로 소멸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나) 한편 위와 같이 시효완성 이후에 제기된 후소에서 채무자가 시효완성을 항변하지 아니한 결과 상대적 소멸설의 견지에서 채무자의 시효원용권이 실체법적으로 소멸한다고 보는 것을 두고, 이를 채무자의 묵시적인 시효이익의 포기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효이익 포기는 시효가 완성된 사실을 알면서 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후소가 공시송달로 진행된 사안과 같이 채무자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사실을 알면서 시효원용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으므로, 시효완성 후에 제기된 후소에서 채무자가 시효완성 항변을 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채무자가 묵시적으로 시효이익을 포기하였다고 단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나아가 소멸시효기간이 이미 경과하였는데 어떻게 소멸시효의 중단이 가능하냐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는데, 이 또한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절대적 소멸설의 도그마에 경도된 시각이다. 즉, 절대적 소멸설에서 단순하게 소멸시효기간의 경과만으로 권리가 곧바로 소멸한다는 원칙을 강조하면, 소멸시효 완성 전에는 소멸시효 중단만이 있을 수 있으며,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후에는 더 이상 소멸시효 중단이 불가능하고 오직 시효이익의 포기만이 있을 수 있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가능하다. 그러나 상대적 소멸설에는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였어도 채무자가 원용하지 않아 권리가 존속하는 동안에는 채권자가 재판상 청구 등으로 소멸시효를 중단시켜 시효원용권을 소멸시키고 새로운 소멸시효기간을 진행시킬 수 있다는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이것이 실무상 소멸시효기간 경과 후 시효연장을 위하여 제기된 다수의 소송에서 공시송달이나 자백간주로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되고 있는 현실과도 부합하는 설명이다. 게다가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에서도 보통 변론주의와 결합하여 채무자가 시효완성 항변을 하지 않는 한 직권으로 이를 소송에서 고려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에, 채권자가 소멸시효기간 경과 후 시효연장을 위하여 제기한 소송에서 시효완성의 항변이 없어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된 경우, 재판상 청구로 소멸시효가 중단된 것으로 여겨 판결확정일로부터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새로이 진행한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와 달리 소멸시효기간이 이미 경과한 후라는 사정만으로 이를 묵시적인 시효이익의 포기라고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상대적 소멸설은 물론이고 절대적 소멸설에서도 변론주의와 결합한 입장에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후에도 재판상 청구 등을 통해 소멸시효를 중단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으며, 위와 같은 전제에서 상대적 소멸설은 이 경우 민법 제178조에 따라 새로운 소멸시효기간이 진행하는 점 등을 근거로 기왕에 발생한 시효원용권이 실체법적으로 소멸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상대적 소멸설의 입장에서는 제2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였다고 하더라도 채무자에게 시효원용권이 발생할 뿐이고, 채권은 시효원용권의 행사가 없는 한 계속 존재하므로, 채권의 한시성 관념 등을 이유로 채권자의 권리행사를 막을 명분이 없다. 한편 채무자가 시효원용권을 행사하지 않는 사이에 채권자가 동일한 후소를 제기하여 승소판결이 확정되면 이로써 소멸시효가 중단되어 새로운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진행하므로 채무자의 시효원용권은 실체법적으로 소멸하게 된다. 그 결과 채권자는 채무자의 시효원용권 행사 여하에 따라 언제든지 권리가 소멸할 수 있는 불안정한 지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 10년이 경과한 후에도 채권자에게는 위와 같이 채무자의 시효원용권을 소멸시켜 자신의 권리를 보전하기 위하여 시효중단의 재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된다.
3) 절대적 소멸설의 관점에서 소멸시효기간 경과 후에 시효중단의 재소가 허용되는지 여부
가)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절대적 소멸설은 소멸시효 완성으로 실체법적으로 권리가 소멸한다고 보는 까닭에,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 시효중단을 위하여 재소가 제기된 경우에 이것이 허용된다는 논리를 구성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이미 원고 승소의 확정판결이 존재하는 경우이기 때문에 원고가 또다시 동일한 소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그럴 만한 권리보호이익이 있다고 인정되어야 하는데,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한 사실만으로 채무자의 원용을 기다리지 않고 권리가 이미 소멸하였다고 보는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에서는 일단 그와 같은 권리보호이익이 없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절대적 소멸설에서는 변론주의와 결합하여 소멸시효기간의 경과만으로 실체법적으로 이미 권리가 소멸하기는 하였지만 소송에서는 채무자가 시효완성 항변을 하지 않는 한 법원이 이를 직권으로 고려할 수 없다고 보고 있고, 나아가 실제로 후소에서 채무자가 시효완성의 항변을 하지 않아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는 경우 그 기판력의 시적 범위에 따른 차단효로 인하여 채무자가 기판력 표준시인 후소의 변론종결 전에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사실을 더 이상 소송상 항변으로 주장할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이미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였더라도 어떠한 이유로 채무자가 시효완성의 항변을 하지 않는 상황을 기대하고 일단 후소를 제기해볼만한 이유가 있다. 즉, 채권자가 전소 확정판결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 판결확정일로부터 10년이 경과한 때에도 채무자를 상대로 강제집행을 할 수는 있지만, 채무자가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여 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 표준시 이후 발생한 새로운 사유인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경우 채권자의 강제집행이 불허될 위험이 있다. 반면 채권자가 전소 확정판결뿐만 아니라 후소 확정판결까지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전소 확정판결과 후소 확정판결 중 어느 것이든 선택하여 채무자를 상대로 강제집행에 나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채권자가 후소 확정판결에 기초하여 강제집행을 하는 경우, 채무자가 후소 변론종결일 전에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사실을 주장하여 청구이의의 소를 제기하더라도, 위 주장이 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저촉된다고 항변하여 채무자의 청구를 기각시킬 수 있으므로,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이득이 있다. 위와 같이 채권자가 후소에서 채무자의 소멸시효 항변 부제출로 재차 승소 확정판결을 받아서 기판력 표준시 전의 소멸시효 완성 항변이 차단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을 정당한 권리보호이익으로 본다면, 판결확정 후 10년이 경과하여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의 적법성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제2 대상판결은 후소가 전소 판결이 확정되고 10년이 경과한 후에 제기되었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소의 이익이 없다고 하여 소를 각하하여서는 아니되고, 채무자의 항변에 따라 채권이 시효완성으로 소멸하였는지에 관한 본안판단을 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제2 대상판결에서 판결이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 10년이 경과한 이후에 동일한 후소가 제기되고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을 하지 않아 원고 승소 판결이 선고되어 확정되는 경우 후소 확정판결의 기판력에 의하여 그 표준시 이전에 발생한 사유인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차단되는 효과를 명시적으로 설시하지는 아니하였다. 그러나 제2 대상판결이 ① 판결이유에서 ‘후소 판결의 기판력은 후소 변론종결시를 기준으로 발생한다’고 언급한 점, ② 판결이유에서 ‘피고가 후소 절차에서 소멸시효 완성을 들어 항변할 수 있고 그 주장이 인정되면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여야 한다’고 설시한 것을 반대해석하면 피고의 시효완성 항변이 없는 경우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하여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되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제2 대상판결은 앞에서 본 절대적 소멸설에 변론주의 원칙을 결합한 견해와 같은 견지에서 채권자가 전소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10년이 경과한 후에도 새로운 확정판결의 기판력으로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차단되는 효과를 기대하고 후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이익이 있음을 인정한 취지로 해석된다.
나) 사견으로는,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상대적 소멸설을 취한다면 모르되, 절대적 소멸설의 입장을 취한다면 채권자가 이미 승소 확정판결까지 받은 마당에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또다시 동일한 후소를 제기하는 것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절대적 소멸설에 따라 소멸시효기간의 경과만으로 실체법상 권리가 곧바로 소멸한다고 보더라도 변론주의 원칙이 적용되어 소송에서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으로 주장하지 아니하면 직권으로 이를 고려할 수 없어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하여야 하고, 그 판결이 확정되면 그 기판력 표준시 이전의 사유인 소멸시효 완성의 항변이 차단되는 결과 채권자에게는 그러한 상황을 기대하고 후소를 제기할 이익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권리보호의 이익을 단순히 원고가 소를 제기할 주관적인 이유나 사실상의 필요성만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는 점도 앞에서 본 바와 같다. 모든 소송에는 각자 나름의 필요와 이유가 있을 것이므로, 만약 위와 같은 주관적인 이유나 사실상의 필요성까지도 모두 권리보호이익으로 인정하게 되면 권리보호이익이 없음을 이유로 소를 각하하는 경우는 실제로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이며, 그 결과 권리보호이익이라는 소송요건 자체가 형해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원고에게 소를 제기할 주관적인 이유나 사실상의 필요성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할 것이 아니라,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권리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법질서의 내용에 비추어 그러한 이유나 필요성이 객관적으로 정당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권리보호의 이익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구체적으로 시효중단의 재소의 경우 위와 같은 권리보호이익의 존재 여부에 관한 법률적인 판단이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등에 관한 실체법적 검토 결과에 따라 판가름나게 된다는 점 또한 이미 밝혔다.
절대적 소멸설에 의하면, 제2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전소 판결로 확정된 채권이 이미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여 소멸한 상태이다. 앞에서 검토한 바 있지만,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면 곧바로 권리가 소멸한다는 절대적 소멸설의 도그마로부터 채권의 한시성이라는 관념이 도출되며, 그와 같은 채권의 한시성 관념의 근저에는 ‘의무자 보호’라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가 그 정당화 근거로서 존재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절대적 소멸설에서는 의무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시효기간이 경과하면 곧바로 권리가 소멸한다고 보고, 이것이 채권의 본질적인 특성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가 구체적으로는 입증곤란의 구제,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 의무자의 정당한 신뢰 보호 세 가지로 구성된다는 점도 앞에서 설명하였다. 시효중단 재소의 허용 여부가 다투어지는 한계선상에서 채권의 한시성 관념을 인정하여 권리의 소멸이라는 결과를 용인할지 여부는 해당 사안에서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세 가지가 어느 정도의 의미를 갖는가에 달려 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제1 대상판결 사안에서는 비록 소멸시효기간의 경과가 임박하였을지언정 아직 그 기간이 경과하지는 않아 채권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던 까닭에,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실질적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없어 채권의 한시성 관념을 내세워 민법이 명문으로 금지하지도 않는 시효중단의 재소를 불허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2 대상판결의 사안은 그와 달리 이미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경과하여 실체법적으로 권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시효중단 재소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사안이 권리의 소멸을 정당화하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세 가지가 모두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경우에 해당해야 하고, 이와 달리 그 중 어느 하나라도 실질적 의미를 가진다면 시효중단 재소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제2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 세 가지가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① 먼저 입증곤란 구제에 관하여 보면, 제2 대상판결의 사안은 이미 확정판결을 통하여 의무의 존재와 범위가 밝혀진 경우에 해당하므로, 입증곤란의 구제라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가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② 그러나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에 관하여 보면, 비록 그동안 채권의 만족을 얻지 못한 것이 오롯이 채권자의 잘못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는 하나, 그럼에도 민법이 정한 10년의 기간 동안 권리행사가 지연되었다면 이는 일단 채권자의 책임으로 보아 제재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와 달리 10년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후임에도 채권자가 그 책임을 면한다고 보려면 채무자가 고의로 재산을 은닉하여 권리행사를 방해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어야 할 것인데, 제2 대상판결 사안에서는 그와 같은 사정이 엿보이지 아니하므로, 시효중단의 재소를 불허하여 권리행사 태만에 대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③ 마지막으로 의무자의 정당한 신뢰 보호에 관하여 본다. 일단 제2 대상판결 사안은 확정판결을 통하여 의무의 존재와 범위가 밝혀진 상태이므로, 원칙적으로 권리불행사에 대한 의무자의 신뢰의 정당성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이기는 하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확정판결로 의무의 존재의 범위가 밝혀졌다고 하더라도, 그 후에 또다시 권리불행사의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었고, 급기야 그 기간이 민법이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으로 규정한 10년을 넘어서기에 이르렀다면, 그와 같이 민법에 명문으로 규정된 기간을 넘어 오랫동안 축적된 의무자의 신뢰를 이제 와서 아무런 보호가치가 없는 것으로 쉽사리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국 위와 같은 경우는 단순히 확정판결이 존재한다는 사정만으로 권리의 불행사에 대한 의무자의 신뢰가 정당하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의무자가 고의로 재산을 은닉하여 확정판결에 따른 권리실현을 방해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더해져야만 비로소 권리불행사에 대한 의무자의 신뢰를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인데, 제2 대상판결 사안에서는 그러한 특별한 사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제2 대상판결 사안은 비록 확정판결이 존재하는 경우이기는 하나, 위와 같은 여러 사정에 비추어 판결확정 이후의 권리불행사에 대한 의무자의 신뢰가 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
이처럼 절대적 소멸설에서 판결확정 후 10년이 지나 이미 소멸한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려면 채권의 한시성 관념의 정당화 근거인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가 온전히 부정되어야 하는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제2 대상판결의 사안은 그 중 두 가지가 여전히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경우 제2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는 시효중단의 재소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4) 검토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상대적 소멸설을 취하는 경우 제2 대상판결의 사안에서 판결로 확정된 채권의 소멸시효기간 10년이 경과하였더라도 시효원용권의 행사가 없는 한 채권은 존속하고, 채권자로서는 채무자의 시효원용권을 소멸시키고 자신의 권리를 보전할 필요가 있어 권리보호이익이 인정되므로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게 된다. 반면 절대적 소멸설에서는 시효의 완성으로 이미 채권이 소멸하여 보전할 권리 자체가 없을뿐더러, 채권의 한시성 관념을 뒷받침하는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가 여전히 실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기 어렵다.
라. 소결
위와 같이 기판력과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통하여 제2 대상판결의 당부를 검토하였다. 그 결과 기판력의 본질에 관한 모순금지설에 따라 승소 확정판결을 받은 채권자가 시효중단의 재소를 제기할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할 여지를 열어두었고, 권리보호이익의 구체적 판단에 들어가서는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상대적 소멸설의 견지에서 소멸시효 완성에도 불구하고 시효원용권 행사가 없는 한 실체법상 존속하는 채권의 보전을 위하여 제기된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다만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다면 채권이 실체법적으로 이미 소멸하였기 때문에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에 비추어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할 권리보호이익을 인정할 수 없어 후소를 각하하는 것이 타당하다. 사견은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상대적 소멸설을 지지하는 입장이므로 제2 대상판결의 결론에 찬성하나, 제2 대상판결의 이유를 보면 절대적 소멸설을 취하면서도 이미 실체법상 소멸한 채권의 시효중단을 위한 재소를 허용하자는 것이어서, 그 판결이유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Ⅶ. 결 론
지금까지 소액사건 실무에서 종종 마주하는 시효중단 재소의 적법 여부에 관하여 기판력의 본질과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라는 두 가지 분석틀을 가지고 살펴보았고, 이를 토대로 제1, 2 대상판결의 당부를 검토해보았다. 먼저 기판력의 본질에 관한 논의를 검토하였고, 모순금지설의 견지에서 소의 이익과 기판력의 시적 범위 등에 관한 일반론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시효중단 재소의 소의 이익을 인정할지 여부는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관한 실체법적 검토를 통해 판가름난다는 점을 확인하고, 그에 따라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와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았다. 이어서 대상판결들에 대한 학계와 실무계의 평석을 개관해보았다. 마지막으로 그동안의 검토 결과를 종합하여 기판력과 소멸시효제도의 본질에 비추어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시점과 소멸시효 완성 후에 각각 제기된 시효중단 재소를 허용할지 여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사견을 정리하였다. 우선 제1 대상판결 사안처럼 소멸시효 완성이 임박한 경우 아직 실체법적으로 채권이 존속하고 있으므로,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하여 어떠한 견해를 취하든 민법이 명문의 금지규정을 두지 않은 시효중단의 재소를 불허할 뚜렷한 명분이 없다. 그러나 제2 대상판결의 사안처럼 소멸시효기간이 이미 경과한 경우라면 상대적 소멸설에서는 여전히 실체법적으로 채권이 존속하고 있어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하는 결론에 이르게 되지만, 절대적 소멸설을 취한다면 실체법적으로 채권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소멸시효제도의 존재이유를 부정하고 시효중단 재소를 허용하기가 쉽지 않다.
시효중단 재소의 허용 여부는 기판력의 본질과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 등과 같은 어려운 쟁점들이 연관되어 있어 판단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다. 나아가 이에 더하여 제1 대상판결에서 쟁점이 된 재판상 청구와 압류․가압류 등 다른 소멸시효 중단사유들의 비교, 소멸시효제도의 운용방법에 따른 사회경제적 영향, 외국의 입법례 등 추가적으로 검토할 사항들이 많다. 이러한 쟁점들은 제1 대상판결에서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및 그 보충의견들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 된 것들이지만, 제2 대상판결의 사안에서도 올바른 결론을 도출해내기 위하여 충분히 논의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이 글에서는 사안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각의 차이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기판력의 본질과 소멸시효 완성의 효과에 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검토의 주된 대상이 그에 국한된 나머지 위에서 예시한 다른 여러 쟁점들에 대한 검토는 시작조차 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도출된 결론도 위 두 가지 분석틀에만 근거한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시효중단의 재소를 허용할지 여부에 관하여 풍부한 논의를 진행하고 보다 타당한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이 글에서 살펴본 이론적인 쟁점들뿐만 아니라 제1 대상판결에서 논의된 다른 여러 쟁점들에 대하여도 충분한 연구와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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